[폴 새뮤얼슨 '특별기고'] '한국 新경제 성공여부...'
입력
수정
[ 한국 新경제 성공여부 ''창조적 파괴''에 달렸다 ]
지난 1980년대까지 한국과 일본엔 뚜렷한 경향이 하나 있었다.양국은 서구의 발전된 기술을 어느 정도 따라잡는데 성공, 이를 바탕으로 유럽과 북미에서 경쟁력을 확보해 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미국의 1인당 생산성은 여전히 세계 1위였다.
그러나 유럽과 일본 한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에 대한 미국의 우위는 점차 약해지고 있었다.이에 따라 아시아국가들이 제조업 생산성과 복지수준에서 20년내에 유럽 및 미국과 동등한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들이 지난 90년에 쏟아져 나왔다.
실제로 유럽과 미국의 많은 사람들은 21세기에는 몇몇 아시아국가들이 미국을 앞설 것으로 내다봤다.
일부 전문가들은 특히 일본과 한국의 재벌체제가 서구의 일반적인 기업형태보다 더 나은 시스템이라고 말하기도 했다.서구시스템에서는 정부와 은행간 유착관계가 느슨하고 기업가들은 매일매일 변하는 자기 회사의 주가에 노심초사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2000년이 되자 전문가들의 의견은 크게 달라졌다.
90년대에 기술분야의 미국 생산성 증가는 미 정부를 비롯해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특히 텔레커뮤니케이션, 생명공학, 분자의학 연구는 장족의 발전을 이룩했다.
미국의 이같은 상황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선 미국은 다른 나라에 대해 엄청난 수출시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과 주식 시장의 거품이 꺼지고 내수마저 정체상태에 빠진 일본의 경우 미국으로부터의 수입 주문 증가덕에 경기후퇴로까지 사태가 악화되지는 않았다.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등 아시아 신흥국들은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은행들의 도움으로 금융시장 붕괴와 채무불이행의 위험에서 벗어나 금융시장의 회생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지난번 외환위기 때 한국은 단기외채의 만기가 연장되지 않아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김대중 대통령과 부지런한 한국의 노동자들은 경제개혁 프로그램에 착수했다.
그 덕에 한국증시도 급속히 회복됐다.
또 주요 산업분야에서 한국경제는 외국자본과 합작, 파산을 면할수 있었다.
동질적인 아시아 사회는 전통적으로 외국자본과의 합작에 반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환란후 외국과의 합작바람은 아시아의 오랜 관습과 외국자본에 대한 반감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 점에서 한국은 지금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
이에 대한 한가지 예가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지에 실렸다.
한국의 OB맥주가 벨기에 맥주회사와 지분 공동소유에 합의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변화를 두려워했다.
"외국 경영진이 한국인 경영진을 대체할 것인가"
"평생 고용보장은 지켜질 것인가" 등이 그들이 품었던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기우였다.
새 경영진은 한국 노동자들과 격의없이 융화하고 합리적이면서 효율적인 경영방법을 도입했다.
새로운 동업자들은 악마가 아니었다.
이 사례를 통해 한가지 교훈을 얻을수 있다.
그것은 바로 신경제가 구경제 기업을 대체한다고는 하지만 서구나 아시아지역에서 여전히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구경제기업에 고용될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지금 고임금 사회가 됐다.
이 때문에 구경제 분야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한국인들은 좀더 빠르게 움직이고 변해야 한다.
일찍이 하버드대 교수였던 죠셉 슘페터가 주창한 "창조적 파괴"는 오늘날 한국의 기업구조에 변화의 압력을 행사할 것이다.
글로벌화는 어느 나라에서도 인류 가치관의 적이 아니다.
앞으로 한국경제는 구경제의 영향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
그렇지만 한국은 신경제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재능있고 잘 교육받은 인적자원을 갖고 있다.
만약 90살까지 산다면 나의 호흡순환계를 보존하고 전립선암을 막아주는 기술적 처방이 한국의 실험실에서 완성될 수도 있다.
한국이 신경제에서도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은 미국의 최고대학에 재학중인 나의 가장 유능한 제자중 상당수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로비가 판치고 부패와 정치적 타락이 한국사회를 지배하게 되면, 또 계급투쟁과 고학력 노동자와 저학력 노동자간의 소득 불균형이 심화되면, 한국에서는 구경제 기업과 신경제 기업이 조화로운 성공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큰 행운과 축복을 누리고 있는지 깨달아야 한다.
대만은 한국과 매우 유사한 사회다.
그러나 대만은 중국사회의 영향아래 있다.
대만의 창조적 에너지가 중국과의 오랜 불화를 얼마나 극복할 수 있을까.
앞으로 언젠가 남한과 북한이 보다 가까운 협력관계에 들어서면 한국은 2천만명의 북한인력을 활용, 지금의 열배가 넘는 생산성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투자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인종에 대한 반감과 전쟁이 경제적 발전을 둔화시켰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유교사상과 기독교가 융합돼 시너지효과를 내고 있다.
높은 기술력만으로는 경제적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
계급과 인종간의 갈등이 한 사회의 근간을 흔들지 않는 사회는 정말 운좋은 사회다.
한국이 바로 이런 운좋은 사회중 하나다.
결론적으로 말해 풍족하고 성공적인 현대 경제국가가 되기 위해 그 사회가 잔인하고 비인간적이며 치열한 경쟁으로 가득찬 정글이 될 필요는 없다.
한국이 조금만 더 남을 생각하는 이타주의로 눈을 돌린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대성공할 수 있다.
높은 수준의 최저임금, 세분화된 산업규제, 선별적인 보호주의 수입정책들로는 한 사회의 복지를 증대시킬수 없고 평등도 이루지 못한다.
그렇지만 소득이전 메커니즘(fiscal transfer mechanism), 즉 세금과 소득 재분배는 사회복지와 평등을 증대시킬수 있다.
물론 이 메커니즘은 효율성과 진보면에서 약간의 비용이 뒤따른다.
민주국가에서 이 선택은 유권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 약력 ]
하버드대 경제학박사
1970년 노벨경제학상
현재 MIT 명예교수
지난 1980년대까지 한국과 일본엔 뚜렷한 경향이 하나 있었다.양국은 서구의 발전된 기술을 어느 정도 따라잡는데 성공, 이를 바탕으로 유럽과 북미에서 경쟁력을 확보해 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미국의 1인당 생산성은 여전히 세계 1위였다.
그러나 유럽과 일본 한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에 대한 미국의 우위는 점차 약해지고 있었다.이에 따라 아시아국가들이 제조업 생산성과 복지수준에서 20년내에 유럽 및 미국과 동등한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들이 지난 90년에 쏟아져 나왔다.
실제로 유럽과 미국의 많은 사람들은 21세기에는 몇몇 아시아국가들이 미국을 앞설 것으로 내다봤다.
일부 전문가들은 특히 일본과 한국의 재벌체제가 서구의 일반적인 기업형태보다 더 나은 시스템이라고 말하기도 했다.서구시스템에서는 정부와 은행간 유착관계가 느슨하고 기업가들은 매일매일 변하는 자기 회사의 주가에 노심초사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2000년이 되자 전문가들의 의견은 크게 달라졌다.
90년대에 기술분야의 미국 생산성 증가는 미 정부를 비롯해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특히 텔레커뮤니케이션, 생명공학, 분자의학 연구는 장족의 발전을 이룩했다.
미국의 이같은 상황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선 미국은 다른 나라에 대해 엄청난 수출시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과 주식 시장의 거품이 꺼지고 내수마저 정체상태에 빠진 일본의 경우 미국으로부터의 수입 주문 증가덕에 경기후퇴로까지 사태가 악화되지는 않았다.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등 아시아 신흥국들은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은행들의 도움으로 금융시장 붕괴와 채무불이행의 위험에서 벗어나 금융시장의 회생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지난번 외환위기 때 한국은 단기외채의 만기가 연장되지 않아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김대중 대통령과 부지런한 한국의 노동자들은 경제개혁 프로그램에 착수했다.
그 덕에 한국증시도 급속히 회복됐다.
또 주요 산업분야에서 한국경제는 외국자본과 합작, 파산을 면할수 있었다.
동질적인 아시아 사회는 전통적으로 외국자본과의 합작에 반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환란후 외국과의 합작바람은 아시아의 오랜 관습과 외국자본에 대한 반감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 점에서 한국은 지금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
이에 대한 한가지 예가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지에 실렸다.
한국의 OB맥주가 벨기에 맥주회사와 지분 공동소유에 합의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변화를 두려워했다.
"외국 경영진이 한국인 경영진을 대체할 것인가"
"평생 고용보장은 지켜질 것인가" 등이 그들이 품었던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기우였다.
새 경영진은 한국 노동자들과 격의없이 융화하고 합리적이면서 효율적인 경영방법을 도입했다.
새로운 동업자들은 악마가 아니었다.
이 사례를 통해 한가지 교훈을 얻을수 있다.
그것은 바로 신경제가 구경제 기업을 대체한다고는 하지만 서구나 아시아지역에서 여전히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구경제기업에 고용될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지금 고임금 사회가 됐다.
이 때문에 구경제 분야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한국인들은 좀더 빠르게 움직이고 변해야 한다.
일찍이 하버드대 교수였던 죠셉 슘페터가 주창한 "창조적 파괴"는 오늘날 한국의 기업구조에 변화의 압력을 행사할 것이다.
글로벌화는 어느 나라에서도 인류 가치관의 적이 아니다.
앞으로 한국경제는 구경제의 영향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
그렇지만 한국은 신경제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재능있고 잘 교육받은 인적자원을 갖고 있다.
만약 90살까지 산다면 나의 호흡순환계를 보존하고 전립선암을 막아주는 기술적 처방이 한국의 실험실에서 완성될 수도 있다.
한국이 신경제에서도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은 미국의 최고대학에 재학중인 나의 가장 유능한 제자중 상당수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로비가 판치고 부패와 정치적 타락이 한국사회를 지배하게 되면, 또 계급투쟁과 고학력 노동자와 저학력 노동자간의 소득 불균형이 심화되면, 한국에서는 구경제 기업과 신경제 기업이 조화로운 성공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큰 행운과 축복을 누리고 있는지 깨달아야 한다.
대만은 한국과 매우 유사한 사회다.
그러나 대만은 중국사회의 영향아래 있다.
대만의 창조적 에너지가 중국과의 오랜 불화를 얼마나 극복할 수 있을까.
앞으로 언젠가 남한과 북한이 보다 가까운 협력관계에 들어서면 한국은 2천만명의 북한인력을 활용, 지금의 열배가 넘는 생산성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투자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인종에 대한 반감과 전쟁이 경제적 발전을 둔화시켰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유교사상과 기독교가 융합돼 시너지효과를 내고 있다.
높은 기술력만으로는 경제적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
계급과 인종간의 갈등이 한 사회의 근간을 흔들지 않는 사회는 정말 운좋은 사회다.
한국이 바로 이런 운좋은 사회중 하나다.
결론적으로 말해 풍족하고 성공적인 현대 경제국가가 되기 위해 그 사회가 잔인하고 비인간적이며 치열한 경쟁으로 가득찬 정글이 될 필요는 없다.
한국이 조금만 더 남을 생각하는 이타주의로 눈을 돌린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대성공할 수 있다.
높은 수준의 최저임금, 세분화된 산업규제, 선별적인 보호주의 수입정책들로는 한 사회의 복지를 증대시킬수 없고 평등도 이루지 못한다.
그렇지만 소득이전 메커니즘(fiscal transfer mechanism), 즉 세금과 소득 재분배는 사회복지와 평등을 증대시킬수 있다.
물론 이 메커니즘은 효율성과 진보면에서 약간의 비용이 뒤따른다.
민주국가에서 이 선택은 유권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 약력 ]
하버드대 경제학박사
1970년 노벨경제학상
현재 MIT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