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기자의 '책마을 편지'] 카프카를 위하여

"카프카가 지금 태어났더라면 출판사를 구하지 못해 책을 못냈을 겁니다"

한 미국 출판사 사장의 얘기입니다.잘 팔리는 책만 내는 상업주의의 폐해를 꼬집는 말이지요.

미국이나 독일이나 마찬가지인 것같습니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만난 각국 출판기획자들은 너나없이 이 문제를 지적했습니다.콘텐츠 없는 하드웨어가 무슨 소용이냐는 거죠.

그러나 현실은 다릅니다.

전시장을 누비는 사람들의 관심은 대부분 어떻게 하면 대박을 터뜨릴 수 있을까,''돈 되는 책''을 먼저 찍는 데 있습니다.카프카처럼 잘 안팔리는 작가들의 책은 머잖아 활자박물관에 갇힐지도 모르지요.

전시 이틀째 만난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가오 싱젠도 ''고독한 작업''에 관해 얘기했습니다.

저는 화려한 전자책과 베스트셀러의 잔치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 시대의 수많은 카프카들을 생각했습니다.그래서 도서전 폐막을 앞두고 카프카를 만나러 체코의 프라하로 왔지요.

프라하성의 비트성당 동쪽에 있는 황금소로 골목.

회색 벽에 22라고 번지가 적힌 집이 나옵니다.

카프카가 ''변신''을 쓴 곳이지요.

그의 여동생이 여기서 선물가게를 했는데 낮에 장사를 끝낸 뒤 밤에는 오빠가 글을 쓸 수 있도록 내부를 깨끗이 치워주었습니다.

두평 남짓한 이 집은 지금도 기념품 가게로 쓰입니다.

아버지의 강요로 문학을 포기하고 법학을 전공했던 카프카.

그는 내면의 열정과 현실의 벽 앞에서 고민하고 갈등했지요.

지금 책과 문학의 운명이 꼭 카프카를 닮았군요.

''정신의 집''이니 ''영혼의 거처''니 하면서도 늘 소외당하는 이방인.

첨단 멀티미디어에 의해 끊임없이 퇴출을 강요당하는 종이책의 비애가 아릿합니다.

골목 끝의 좁은 계단 아래로는 아름다운 몰다우강이 흐릅니다.

영화에 자주 나오는 카를다리도 보이지요.

그 강물 위로 자욱하게 깔리는 프라하의 안개를 내려다보던 카프카의 고뇌가 그대로 전해져옵니다.

아랫동네에는 유태인들이 집단으로 수용됐던 게토지역이 있습니다.

카프카에게 글 쓸 공간을 만들어주던 여동생은 이곳에 갇혔다가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죽었지요.

인터넷과 스타크래프트에 열중하면서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책들을 수용소에 감금했는지요.

벼랑 끝에 몰린 종이책의 쓸쓸함이 더욱 아프게 다가옵니다.

선물가게 뒷창문 아래는 바로 가파른 성벽이지요.

황금골목으로 난 앞문과 낭떠러지에 닿은 뒷문처럼 카프카의 비애는 아직도 동전의 앞뒤마냥 남아있습니다.

석양빛에 물든 몰다우강과 유태인들의 게토가 함께 내려다보이는 언덕.

이곳에서 낮은 문에 자주 이마를 부딪히는 카프카의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지요.짧은 겨울해가 지고 노을이 짙어오는 동안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인쇄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대문호의 슬픔이 온 골목을 가득 채웠습니다.

프라하=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