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핀란드 경쟁력의 원천..문휘창 <서울대 국제경영학 교수>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파리공항을 거쳐 헬싱키공항에 도착했다.

항공편이 좀 불편하다.핀란드가 유럽의 중심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헬싱키에서 다시 몇시간 기차를 타고 미켈리라는 도시로 갔다.

가는 도중 차창밖의 풍경이 매우 아름다웠다.추운 날씨에 눈이 녹지 않아 모두 하얗게 덮인 들판이 숲과 호수와 어우러져 매우 깨끗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너무나 조용하고 한가로워 이 나라 경제발전의 원동력은 찾을 수 없었다.

경제지표상으로 항상 국가경쟁력 상위 몇위 안에 들고,정보통신분야에서 세계 최고인 노키아라는 회사를 만들어낸 핀란드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필자는 현재 헬싱키 경제경영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국제경쟁력이라는 주제로 학생들과 토론을 했다.

핀란드 경쟁력의 핵심은 무엇인가.그들의 얘기로는 많은 산림자원,높은 교육열,그리고 높은 수준의 연구개발 투자다.

관련 문헌을 찾아봐도 비슷한 얘기다.

그러나 국제경쟁력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필자로서는 이러한 답변에 만족할 수 없었다.

많은 천연자원을 갖고도 경쟁력이 없는 나라가 많다.

오히려 대부분의 선진국은 자원이 부족한 게 보통이다.

높은 교육열을 말한다면 우리나라 등 동북아시아 국가들을 따라 갈 수 없을 것이다.

또 무조건 연구개발 투자만 많이 한다고 해서 경쟁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한 국가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세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문화적 역사적으로 전통있는 강한 기질,경영의 여러 분야 중에서 특별히 돌출되는 경쟁우위분야,그리고 변화에 대처하는 능력이다.한동안 여기서 사람들과 접촉하고,공부하면서 핀란드가 이 세가지 모두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첫째,핀란드인들은 조용하면서 끈기가 있다.

춥고 긴 겨울을 견뎌내면서 생겨난 강한 기질이다.

조용함이 계속되면 불안해서 누군가 먼저 말을 하는 것이 보통인데,핀란드인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조용함에 불안해 하지 않고,오히려 조용함을 통해서 의사소통을 한다.

여기서 읽은 글 중에 재미있는 것이 있었다.

핀란드인들이 휴대전화를 애용하는 이유도 쓸데없이 마주 앉아 오랫동안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핀란드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별로 말을 하지 않아 여기에 온 외국 교수들이 애를 좀 먹는다고 하지만 그들은 침묵 속에서 대화하고 강의를 끝까지 경청하는 끈기를 보여 준다.

둘째,경영의 여러 분야 중에서 핀란드는 특히 엔지니어링에 강하다.

고졸이상 4분의3 이상이 이공계이며,대부분의 경제활동인구가 공학 마인드를 갖고 있다.

노키아사의 종업원 6만명 중에서 약 3분의1이 연구개발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정확한 엔지니어링에 바탕을 둔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그들의 핵심역량이다.

여기 대학에서 내준 교수아파트에 살면서 이러한 것을 많이 느꼈다.

추위를 막기 위한 이중창문, 너무 뜨거운 물이 나오는 것을 방지하는 안전장치가 부착된 수도꼭지,문고리,전자제품 등 여러 곳에서 엔지니어링의 핵심역량이 돋보였다.

셋째,핀란드 경쟁력의 가장 중요한 원천은 환경변화 대처능력,즉 세계화와 빠른 구조조정이다.

핀란드에서는 사실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다.

과거엔 영어교육에 남다른 노력을 별로 안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지금 필자가 가르치고 있는 프로그램은 전부 영어로 진행된다.

더욱이 놀라운 일은 거의 모든 교수가 외국에서 초빙돼 온 교수다.

한꺼번에 여러면으로 세계화를 진행시키고 있다.

원래 펄프·제지 공장에서 출발한 노키아사도 그 후 고무 및 타이어 분야로,그리고 다시 이동통신산업으로 탈바꿈하면서 경쟁력을 키워왔다.

빠른 구조조정이 이 회사의 핵심역량이다.핀란드는 지난 수백년 동안 스웨덴과 러시아의 지배를 받아왔다.진정한 산업화는 2차대전 이후에야 시작됐다.그러나 오늘날 이런 핵심역량을 바탕으로 핀란드는 과거 자국을 지배했던 주변국을 능가하는 경쟁력을 발휘하고있다.핀란드의 핵심역량인 조용한 끈기,정확한 엔지니어링,환경변화 대처능력은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hcmoon@sias.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