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 대중속으로]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硏 소장>

역사학자 이덕일(40.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씨는 스스로를 ''벤처기업가''라고 말한다.

1997년 이래 써낸 10여권의 대중적 역사서가 인기를 끌면서 일약 ''스타급 필자''로 떠올랐지만 그가 가진 자산이라곤 컴퓨터 한 대와 머리 속에 든 지식뿐이기 때문이다.그의 성공은 ''대중과 함께 하는 역사학''''대중적 글쓰기''를 지향해온 결과다.

"한국 역사학계는 그동안 역사대중화를 등한시한 원죄를 안고 있어요. 특히 일제때 조선사편수회에 합류해 친일논리 구축에 협조했던 친일 사학자들이 해방후 학계의 주류를 차지하면서 현실을 외면하고 대중과의 접촉을 기피했지요. 하지만 대중과 함께 하지 않는 역사는 죽은거나 다름없습니다"

이씨가 역사 대중화의 기치를 들고 나선 것은 역사학이 사회와 인간에 보다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는 믿음에서다.이같은 믿음은 역사학이란 시공을 가로질러 전체를 통찰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지향점과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판단에서 비롯된다.

때문에 이씨는 "현재 시점에서 역사 대중화의 과제는 우선 학계의 기존 연구성과를 대중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기존학계가 당연시해온 것에 대한 재검토와 문제 제기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역할을 위해 그가 택한 길이 대중적 역사서 집필이다.역사학 전공자로선 처음으로 역사 대중화 작업에 뛰어든 셈.지난 97년 발간된 첫 대중역사책인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를 써낸 이래 정력적으로 책을 내왔고 그때마다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특히 99년에는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2권)''와 ''유물로 읽는 우리 역사'' ''거칠 것이 없어라'' 등 5권을 쏟아냈고 지난해에는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가 베스트셀러가 됐다.

"우리 역사가 장구한 만큼 대중들을 위해 써야 할 이야기는 너무나 많습니다. 아이디어는 많은데 시간이 없어서 다 쓸 수 없을 뿐이죠"실제로 이씨는 하루 8∼15시간을 원고 작성에 할애한다.

이 정도면 하루에 2백자 원고지 15장 정도는 충분히 쓸 수 있어 게으름만 피우지 않으면 연간 4천∼5천장의 원고를 써낸다는 얘기다.

이씨의 관심영역은 자신의 전공 분야를 훨씬 벗어난다.

그는 숭실대에서 ''코민테른과 조선공산당의 관계 연구''로 석사학위를,''동북항일연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글쓰기는 조선과 고대를 넘나들었다.

앞으로는 백제 신라 고려 등 전 영역을 다루겠다는 포부다.

4월에는 초기 무정부주의자들을 다룬 ''이회영과 아나키스트''(가제)를 출간할 예정이다.

이씨는 "인문학이 위기라는 말은 옳지 않다"고 단언한다.

사회일반에는 역사와 관련한 수요가 너무나 많은 데도 학자들이 이에 부응하지 못할 뿐이라는 얘기다.

"예컨대 올해 ''한국 방문의 해''에 맞춰 사학과 출신들이 문화답사 전문가이드로 나설 수도 있습니다. 출판사만 해도 역사와 관련된 기획을 해도 필자를 찾지 못해 애를 먹는게 현실 아닙니까"

이씨는 역사든 철학이든 학생들이 자기 분야에서 해박한 지식을 갖도록 고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가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학계 스스로 전문영역을 개발하면 일할 분야는 많다는 것이다.

이씨가 자신의 직업을 ''역사평론가''라고 소개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책과 자료를 뒤지고 글쓰는 일이 재미있다"며 "역사의 대중화는 역사학계가 반드시 가야 할 길 중의 하나"라고 자부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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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학자 이덕일 ]

충남 온양에서 태어난 이 소장은 고교(천안 중앙고)를 졸업했지만 5년 뒤인 85년에야 대학(숭실대 사학과)에 발을 디뎠다.

여의치 않았던 집안 형편과 정신적 방황, 군복무 등 때문이었다.

"공부를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에 뒤늦게 출발했지만 박사학위는 동년배들보다 빨리 땄다.

박사과정땐 시간강사 수입으로 생계를 꾸릴 수 없어 1년 가량 학원강사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사가 된 뒤에도 대학의 시간강사와 전임강사와의 차이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컸고 스승의 뒤만 쫓아 다녀야 하는 도제식 풍토도 견디기 어려웠다.그래서 지난 98년 학교를 그만두고 역사학 대중화 작업에 나섰다.

이후 사화와 당쟁을 소재로 한 두 권의 역사 대중물을 필두로 "사도세자의 고백" "누가 왕을 죽였는가"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등이 잇따라 베스트셀러로 기록되면서 주목받는 학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