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진정한 평등주의사회란 .. 김진애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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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애
평등은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다.인간으로서 같은 욕구와 같은 바람.가짐을 인정하는 것, 같은 권리를 갖는다는 것, 같은 기회를 갖는다는 것….
평등이란 참으로 흐뭇한 가치다.
인간사회는 조금만 놔두어도 불평등이 심해지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평등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여기에 국가의 존재 의미가 있다.
시장에서 심화될 수 있는 구조적 불평등을 공공적으로 수정하는 역할이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평등이 우리 사회에서 ''획일적 평등주의''로 빠지는 것은 아닌가.인간사회의 기본 속성을 인위적으로 거스름으로써 오히려 살기 힘든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고민해 보아야 할 때다.
''교육 평준화, 형평성, 지역 균형''은 대표적인 이슈다.
과연 평등주의를 통해서 좋은 결과를 가져 왔나 하는 의문이 드는 사안이다.''교육 평준화''는 결국 하향 평준화를 가져왔을 뿐이다.
평준화된 학교는 못 믿겠고,돈 내고 선택하는 학원을 믿는 기이한 현상을 초래했다.
여전히 ''학벌 지상주의''가 있는 현실에서 ''누구나 시험을 잘 보면 가능하다.
시험 잘 보는 요령은 분명 있다.
시험을 잘 보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희생할 각오가 있다''는 맹목적 믿음에 온 국민을 빠지게 해 버렸다.
부모도 그렇거니와 아이들은 오로지 ''시험준비기계''가 돼버렸다.
''형평성''이라는 말은 어떠한 갈등 상황에서도 제기되는 말이다.
개발의 현장, 정책의 현장, 노동의 현장에서다.
문제는 이 형평성이라는 말이 ''사촌이 땅 사면 배아픈 심리''로 쓰인다는 것이 문제다.
''왜 저기는 되는데 여기는 안되나. 왜 누구는 되고 나는 안되나'' 하는 ''비교 형평성''으로 추락했다.
막무가내의 대립과 갈등이 생기는 이유다.
''지역 균형''은 수없이 제기되는 정책목표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종류의 균형인가.
각 지역의 특색.환경 및 인구특성과 산업 차별화에 따른 균형이 아니라, 결과에 있어서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는 것 아닌가.
그 결과 도시.농촌 할 것 없이 개발 열풍에 휘감겨 ''거기가 거기''인 지역개발이 되는 것 아닌가.
이 뿐만이 아니다.
의료서비스의 현장, 주거서비스의 현장, 금융서비스의 현장 등 어디에서나 ''획일적 평등 가치''를 주장하는 것 때문에 생긴 제도들이 수없이 많다.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는가.
또 획일적 평등주의는 우리 사회의 경쟁력을 파먹는 것에 그치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질''까지도 낮춘다.
최근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는 교육의 위기, 1천만 가족들의 심적 부담과 경제적 부담, 교육을 위해 다른 모든 삶의 질을 포기하는 가족의 고민, 이민까지도 고민해야만 하는 상황.
잘못된 평등주의에 온 국민이 희생되는 격이다.
진정한 평등사회란 서로 다르면서도 화기롭게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사회다.
능력이 다르고, 역할이 다르고, 직업이 다르고, 쌓은 부가 다르고,사는 집이 다르고, 노는 방식이 달라도 괜찮은 사회가 ''진정한 평등사회''다.
삶의 질이 높은 사회란, 자신의 분수에 맞춰 살아도 삶이 재미있고 의미있는 사회다.
남과의 비교란 인간의 본성이지만 남의 모습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삶의 질''이다.
''평등이란 인간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이지만, 차등이란 인간의 본성적인 가치다''
이 두가지가 어울려야 한다.
우리 사회는 ''획일적 평등주의''에서 벗어나 ''차등적 평등주의''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다.
나라의 경제수준이 그러하며 국민의 욕구가 그렇게 변하고 있다.
더욱이 급변하는 세계경제환경이 그러하다.
과감하게 차등적 평등주의를 구현해 보자.
인간의 본성을 누르지 않고 인간사회의 가치를 만드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우리는 ''사람답게'' 살고 싶다.
같은 사람이지만 다르게 살 수 있고, 그 다름을 즐기고 싶다.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서는 더욱 그러하다.우리의 아이들이 기꺼이 차등적 평등의 뜻을 받아들이며 맘 편하고 건강하게 살게 하고 싶다.
jinaikim@www.seoulforum.co.kr
평등은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다.인간으로서 같은 욕구와 같은 바람.가짐을 인정하는 것, 같은 권리를 갖는다는 것, 같은 기회를 갖는다는 것….
평등이란 참으로 흐뭇한 가치다.
인간사회는 조금만 놔두어도 불평등이 심해지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평등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여기에 국가의 존재 의미가 있다.
시장에서 심화될 수 있는 구조적 불평등을 공공적으로 수정하는 역할이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평등이 우리 사회에서 ''획일적 평등주의''로 빠지는 것은 아닌가.인간사회의 기본 속성을 인위적으로 거스름으로써 오히려 살기 힘든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고민해 보아야 할 때다.
''교육 평준화, 형평성, 지역 균형''은 대표적인 이슈다.
과연 평등주의를 통해서 좋은 결과를 가져 왔나 하는 의문이 드는 사안이다.''교육 평준화''는 결국 하향 평준화를 가져왔을 뿐이다.
평준화된 학교는 못 믿겠고,돈 내고 선택하는 학원을 믿는 기이한 현상을 초래했다.
여전히 ''학벌 지상주의''가 있는 현실에서 ''누구나 시험을 잘 보면 가능하다.
시험 잘 보는 요령은 분명 있다.
시험을 잘 보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희생할 각오가 있다''는 맹목적 믿음에 온 국민을 빠지게 해 버렸다.
부모도 그렇거니와 아이들은 오로지 ''시험준비기계''가 돼버렸다.
''형평성''이라는 말은 어떠한 갈등 상황에서도 제기되는 말이다.
개발의 현장, 정책의 현장, 노동의 현장에서다.
문제는 이 형평성이라는 말이 ''사촌이 땅 사면 배아픈 심리''로 쓰인다는 것이 문제다.
''왜 저기는 되는데 여기는 안되나. 왜 누구는 되고 나는 안되나'' 하는 ''비교 형평성''으로 추락했다.
막무가내의 대립과 갈등이 생기는 이유다.
''지역 균형''은 수없이 제기되는 정책목표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종류의 균형인가.
각 지역의 특색.환경 및 인구특성과 산업 차별화에 따른 균형이 아니라, 결과에 있어서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는 것 아닌가.
그 결과 도시.농촌 할 것 없이 개발 열풍에 휘감겨 ''거기가 거기''인 지역개발이 되는 것 아닌가.
이 뿐만이 아니다.
의료서비스의 현장, 주거서비스의 현장, 금융서비스의 현장 등 어디에서나 ''획일적 평등 가치''를 주장하는 것 때문에 생긴 제도들이 수없이 많다.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는가.
또 획일적 평등주의는 우리 사회의 경쟁력을 파먹는 것에 그치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질''까지도 낮춘다.
최근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는 교육의 위기, 1천만 가족들의 심적 부담과 경제적 부담, 교육을 위해 다른 모든 삶의 질을 포기하는 가족의 고민, 이민까지도 고민해야만 하는 상황.
잘못된 평등주의에 온 국민이 희생되는 격이다.
진정한 평등사회란 서로 다르면서도 화기롭게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사회다.
능력이 다르고, 역할이 다르고, 직업이 다르고, 쌓은 부가 다르고,사는 집이 다르고, 노는 방식이 달라도 괜찮은 사회가 ''진정한 평등사회''다.
삶의 질이 높은 사회란, 자신의 분수에 맞춰 살아도 삶이 재미있고 의미있는 사회다.
남과의 비교란 인간의 본성이지만 남의 모습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삶의 질''이다.
''평등이란 인간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이지만, 차등이란 인간의 본성적인 가치다''
이 두가지가 어울려야 한다.
우리 사회는 ''획일적 평등주의''에서 벗어나 ''차등적 평등주의''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다.
나라의 경제수준이 그러하며 국민의 욕구가 그렇게 변하고 있다.
더욱이 급변하는 세계경제환경이 그러하다.
과감하게 차등적 평등주의를 구현해 보자.
인간의 본성을 누르지 않고 인간사회의 가치를 만드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우리는 ''사람답게'' 살고 싶다.
같은 사람이지만 다르게 살 수 있고, 그 다름을 즐기고 싶다.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서는 더욱 그러하다.우리의 아이들이 기꺼이 차등적 평등의 뜻을 받아들이며 맘 편하고 건강하게 살게 하고 싶다.
jinaikim@www.seoulforu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