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실업 100만 시대' 취업전략 이렇게

지난 4일 외환은행 계약직 창구직원 지원서 접수장.

원서가 수북히 쌓여 있는 가운데 이른바 명문대 출신의 이력서들이 눈길을 끈다. 옛날 같았으면 앉아서 "어느 회사를 갈까" 행복한 저울질을 하고 있었겠지만 지금은 진자리 마른자리 가릴 형편이 아니다.

불과 70명의 은행 창구직원을 뽑는데 내로라하는 학교의 졸업생 수십명을 포함한 5백43명이 한판 승부에 나선 것이다.

지원서 접수를 맡은 직원은 "연봉 1천3백50만원인 계약직을 놓고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을 보고 1백만 실업시대가 다시 찾아왔음을 새삼 절감했다"고 말했다. 외환위기를 극복한 것 같았던 즐거움도 잠시.

두번째의 1백만 실업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사회 각분야에 걸친 구조조정으로 지난 99년 2월 1백78만명까지 늘어났던 실업자는 차츰 감소해 지난해 10월 76만명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경기둔화로 실업자가 늘어나면서 지난 2월 현재 1백7만명(실업률 5%)에 달했다.

정부는 실업률이 높아진 것은 계절적 요인까지 겹친 탓이라며 앞으로는 실업률이 다소 내려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경기회복의 조짐이 좀체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최근 국회 실업대책특별위원회에 "경기침체가 계속돼 경제성장률이 4% 이하로 떨어지면 연평균 실업률이 4.2%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했다.

정부가 당초 경제성장률 5~6%를 전제로 추산했던 연평균 실업률 3.7%(실업자수 82만9천명)를 0.5%포인트 높인 것이다.

여기에다 대우자동차,현대건설,금융계의 구조조정은 추가 실업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40~50대 중장년층 실업자 양산이 불가피하다.

중장년층 실업자는 지난 2월말 현재 35만8천명으로 최근 가장 낮았던 지난해 10월의 25만명과 비교해 40% 가량 증가했다.

더구나 불과 4개월만에 10만명이 늘어나는 등 증가 속도가 너무 빨라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직장에서 퇴출된 중장년층이 늘어났으나 이들을 채용하려는 기업이 없는데 따른 결과다.

2월말 현재 34만7천명에 달하는 여성 실업자도 정부의 고민거리로 등장했다.

청소년,중장년층,여성이 일자리를 놓고 힘겨운 취업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눈높이"를 낮추면 얼마든지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

산업인력공단 중앙고용정보원 박천수 책임연구원은 "기대임금과 실제임금간의 격차 근무지 등의 이유로 취업을 포기하는 사례가 많다"며 "3D업종,장시간 근무직,영업직 취업을 꺼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 업종들은 취업하려는 사람이 적어 구인난을 겪고 있다.

중앙고용정보원이 노동부의 고용안정정보망 "워크넷(WorkNet)"의 구인과 구직상황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이같은 현상은 쉽게 감지된다.

분석 결과 워크넷에는 12만여개의 일자리가 올라와 있으며 취업알선과정에 있는 4만9천개를 뺀 7만1천여개 일자리가 구인과 구직자와의 조건 불일치로 채워지지 않았다.

조건 불일치의 가장 큰 이유는 임금.

영업.기획.사무직의 경우 구인업체는 월평균 93만8천원의 임금을 제시했으나 구직자들은 1백43만2천원을 요구,49만4천원의 격차를 보였다.

영업부서 관리자의 경우도 구직업체는 1백21만4천원을 제시한 반면 구직자는 1백65만원을 희망했다.

구인업체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반면 구직자는 지방에 많아 일자리 연결이 제대로 안되는 문제도 있었다.

박 연구원은 "구직자는 임금 등에 연연해하지 말고 눈높이를 낮춰야한다"며 "일단 취업해 기능을 익히고 경력을 쌓은 뒤 몸값을 높이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취업 기회가 왔을 때 단번에 이를 잡을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운영하는 다양한 취업지원제도를 활용해 자신의 가치를 높여 놓으라는 지적이다.

정부는 지난 2월 범정부적인 보완실업대책을 발표하면서 취업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인력난을 겪고 있는 IT분야의 취업교육대상을 당초 2천명에서 2만명으로 대폭 늘려 청소년 실업을 줄이기로 했다.

이중 1천명은 미국 카네기멜론대 등 해외로 파견해 교육을 시키고 1천명은 교육을 실시한 후 일본에 취업시킬 방침이다.

정부지원 인턴대상자도 1만8천6백명에서 1만명을 추가했다.

인턴대상기업도 대기업으로 확대했다.

대기업도 인턴을 채용할 경우 1인당 월 50만원씩 3개월간 임금을 지원하고 채용이 이뤄지면 추가로 3개월간 지원키로 했다.

또 늘어나고 있는 중장년층 실직자를 위해서는 재취업 훈련대상을 1만명에서 2만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특히 중장년층으로만 이뤄진 특별 직업훈련반을 운영할 계획이다.

이와함께 실직자들이 업무경력을 되살려 창업할 수 있도록 1천개 중소기업 창업을 위해 5천억원을 지원할 방침이다.

여성창업을 돕기위해서는 5백명에 대해 e비즈니스 분야 교육을 계획하고 있다. 결국 일자리를 구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만 가지면 길은 얼마든지 열려있는 셈이다.

김도경.홍성원 기자 infof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