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하게 파헤친 인간정체성 .. 토니 모리슨 장편소설 '파라다이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토니 모리슨의 장편소설 ''파라다이스''(들녘)가 번역 출간됐다.

모리슨이 지난 93년 미국흑인으로선 처음으로 노벨상을 받은 이후 5년 만에 내놓은 신작소설이다.앞서 나온 ''비러브드'' ''재즈''에 이어 인간 정체성 찾기에 나선 3부작 시리즈의 완결편으로 평가된다.

소설은 미국 오클라호마주 오지에 자신들 만의 마을을 건설한 흑인들이 마을 외곽에 있는 수녀원을 ''온갖 악의 원천''이라며 습격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흑인들은 19세기말 미시시피와 루이지애나주의 해방 노예들로,천신만고 끝에 ''루비''라는 마을을 건설한다.그러나 근처 수녀원의 존재 때문에 위기감에 사로잡힌다.

아이러니컬하게 수도원은 깊은 상흔을 지닌 여성들의 ''파라다이스''다.

상심끝에 칼로 자해했거나 가족의 살의를 견디다 못해 도피해온 여성들의 은신처다.이 소설은 얼핏보기에 흑인과 여성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인종 및 성차별을 부각시키는 듯 하다.

그러나 실제로 저자가 보여주려는 것은 인간 정체성 찾기다.

가부장제가 지배하는 루비의 내력을 파헤쳐 들어가면서 결국 방아쇠를 당기는 자도, 총알을 피해 달아나는 자도 똑같이 상처받은 피해자들로 그려진다.그래서 작가는 누구도 단죄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그러진'' 사회와 역사 메커니즘에 희생된 인간들에게 깊은 연민을 던진다.

모리슨은 백인사회에서 출세한 지적 엘리트지만 이 작품을 통해 ''흑인이자 여성''이라는 위치에서 ''마이너리티의 정체성''이란 화두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언어는 경험의 대체물에 그치는게 아니라 스스로의 의미를 지닌 존재"라는 소신을 갖고 있는 모리슨은 이 작품에서 품격 높은 수사와 평범한 대화들을 절묘하게 조화시켜 읽는 재미를 배가시켰다.

이 작품은 뉴욕타임스지로부터 ''모리슨의 소설중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다.''비러브드''(1988년 퓰리처상 수상작), ''재즈''도 곧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