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MBA 바로보기'] (19) '합격 조급증 경계를'
입력
수정
목돈 2억원을 가진 사람이 있다.
나이는 30대.
그 나이에 그 정도 투자 여력이면 "큰 손"이라 할 만하다.
은행, 증권사는 물론 부동산사무실에 가도 환영을 받는다.
전망 좋고 투자 조건도 괜찮은 건수가 아니면 "퉁길 수" 있는 여유도 있다.
투자를 한 후라도 문제가 생길 때마다 "야단쳐가며" 자신이 낸 돈에 대해 큰 소리를 칠 수 있다.
미국에서 MBA 공부를 하겠다고 지금 결심한 이도 이 사람과 별반 다를 바 없다.
2년의 세월과 많게는 2억원 가까운 돈을 쓸 준비가 돼있다는 점에서다.
학교를 고를 때 실력을 획기적으로 높여 주는 수업과정이 아니면, 몸값을 치솟게 할 만한 평판이 없는 학교면 관심도 보이지 않아야 정상일 것이다.
그런데 실제는 어떤가.
"저자세"로 일관하는 지원자들이 의외로 많다.
어떻게 하면 입학사정 담당자들의 눈에 맞는 에세이를 쓰고, 듣고 싶어하는 말을 인터뷰에서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데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적잖다.
물론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별 수 없는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재학생들의 경험을 종합하면 "너희들 나를 뽑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며 호기를 부리는게 합격을 위해서 오히려 낫다.
미국인들도 "비즈니스 스쿨은 이미 성공 궤도를 밟아왔고 앞으로도 성공할 것이 분명한 사람을 뽑는다.
그리고 그들이 졸업 후 제 힘으로 성공하게 되면 자기네 학교에서 배운 덕분이라고 광고한다"고 농담한다.
MBA 과정에 다녀보면 이 농담이 반은 진담이란 걸 알게 된다.
성공했다는 흔적, 성공할만한 가능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덕목이 바로 "자신감"이다.
자신감은 지원 과정 여러 곳에서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학부 성적이 낮은 두 사람이 있다고 하자.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에세이와 인터뷰의 상당 부분을 이를 "변명"하는데 소모하게 된다.
반면 자신감이 넘치는 지원자는 대학 성적 외에 다른 잠재력을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사소한 차이 같지만 입학사정 담당자에게 전해지는 느낌은 달라진다.
자신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안되면 그만"이라는 여유 있는 마음가짐이다.
지원자들중엔 소위 랭킹 1위부터 20위까지, 스무 학교 모두에 지원서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이왕 MBA 과정을 밟기로 한 만큼 어떤 학교든 상관없다는 식이다.
문제 있는 자세가 아닐 수 없다.
우선, 지원 과정에서 별로 남는게 없다.
MBA 지원이 의미 있는 것은 스스로 미래를 설계하고 개척해 나가는 경험을 쌓는다는 점에서다.
내게 맞는 학교를 찾는 것은 내가 지금 무엇이 부족한가를 알아가는 과정과 같은 것이다.
아무 데나 가서 아무 것이나 배우겠다는 자세는 "큰 손"으로서의 선택권을 포기한 것에 다름 아니다.
둘째, 서너 개 학교에 집중 지원하는 사람에 비해 지원서류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에세이 문제가 비슷할 경우 한 학교에 썼던 내용을 복사해 또 다른 학교에 그대로 보내는 경우까지 생긴다.
입학사정 담당자들은 이를 뽑아내는데는 선수들이다.
경쟁 입시 풍토에서 자란 우리 직장인들은 일단 어떤 종류의 시험이든 매달리게 되면 반드시 합격을 해야 하고 합격을 하지 못하면 실패요,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누차 강조했듯이 MBA를 대하는 방식은 달라야 한다.
합격만 하면 더 이상의 투자가 필요치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고시나 자격증 시험과는 전혀 다르다.
합격한 다음부터 오히려 돈이 들어가기 시작하고, 또 2년간 제대로 준비해야 원하는 직장, 직책을 겨우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원하지 않은 학교에 합격하는 것이 정말 가고픈 학교에 불합격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재교육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 직장인들이 미래를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선택지는 분명 적다.
위험한 투자니, 과소비니 하는 지적이 많지만 MBA를 유일한 대안으로 선택할 직장인은 그래서 앞으로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게 중에는 MBA 학위로 날개를 다는 경우도 많겠지만 전혀 반대 경우도 나타날 것이다.
그 차이는 분명한 목표요, 1차 목표가 달성되지 않을 때 철수할 수도 있는 탄력적인 전략이라고 하겠다.
미국에만 7백개, 전세계적으로 1천2백개가 넘는 MBA과정 모두가 목표가 될 수는 없다.
따라서 "되면 좋고 안돼도 그만"이라는 여유를 갖고 시작하는게 바람직하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많아야 다섯개 정도의 학교만 고르는 것으로 지원 과정을 시작해 보라.
자신이 프로페셔널로 성공하기 위해 지금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가 밝혀질 것이다.
그 결정 과정을 지원 원서 전반에 나타내는 데만 주력하면 족하다.
올해 합격이 안돼도 그만이다.
내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그건 굳이 MBA가 아니더라도 해결할 방안은 많기 때문이다.
[ 한경닷컴 주미특파원.와튼스쿨 MBA 재학 yskwon@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