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종합상사] (中) 쇠락 배경..계열사 의존.외형경쟁
입력
수정
종합상사는 80년대 말부터 위축되기 시작했다.
포항제철 현대자동차 등 종합상사의 주요 고객이었던 대형 제조업체들이 자체 마케팅 및 영업망을 구축,직수출을 추진하면서부터다.
제조업체들의 잇따른 해외 현지법인 설립으로 종합상사의 강점이던 해외 정보 수집 능력도 매력을 상실했다.
기업환경의 이같은 변화로 인해 종합상사 종사자들 사이에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상사(商事)의 겨울시대'가 도래했다는 자조적인 말이 나돌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80년대 후반 국내 산업구조가 경공업 위주에서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바뀌면서 '제판일체'(製販一體·제조와 판매의 일치) 경향이 나타났다"며 "이것이 '수출대행'이라는 종합상사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에 타격을 주면서 상사의 존립 기반을 뒤흔든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당시 국내 기업의 급격한 임금 상승으로 수출 주종 품목의 대외 경쟁력이 떨어진 것도 종합상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상대적으로 아시아 개도국들의 경쟁력이 높아졌고 그만큼 해외 시장에서 종합상사가 활동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이 줄어든 것.
대우인터내셔널의 Y부장은 "값 싸고 질 좋은 노동력을 바탕으로 생산된 국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낮아지면서 이를 판매하는 종합상사의 마진도 급속히 떨어졌다"고 말했다.
80년대 말 징후를 나타내기 시작한 종합상사의 위기는 외환위기(IMF)를 전후한 90년대 말에 이르러 경제환경의 급변으로 더 심화됐다.
현 정부 들어서면서 강도 높게 추진한 기업개혁은 계열사들의 대행 수출에 대부분 의존했던 종합상사의 수익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어놨다.
실제 현대상사의 경우 그동안 총 매출의 80% 이상을 계열사였던 자동차 석유화학 중공업 조선 전자제품 수출로 채웠지만 올해 들어 매출이 30% 정도 줄었다.
현대상사는 특히 소그룹 분리와 계열사 매각 등으로 그룹 수출창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하면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대우인터내셔널도 대우그룹 해체와 함께 자동차 전자 중공업 등 계열사 실적이 사라지면서 한때 1백50억달러에 달했던 수출실적이 올해는 40억달러로 크게 감소할 전망이다.
금융시장 개방 이후 수출액에 비례해 정부가 싼 이자로 지원해주던 무역금융 축소에 따른 자금조달 능력의 약화도 종합상사의 쇠퇴를 초래하는 데 한몫했다.
사실상 상사는 그룹의 자금조달 창구 역할도 맡아왔기 때문이다.
종합상사 관계자는 "대규모 수출실적을 신용으로 막대한 자금을 끌어다 사업을 확장해온 종합상사들이 금융시장 개방과 국내 금리 인하로 그룹 내에서의 효용가치가 급락했다"고 털어놨다.
정보기술(IT)의 발달과 인터넷 보급 확산도 종합상사의 위상 저하를 가속화시켰다.
인터넷상에 방대한 양의 정보가 나돌면서 종합상사가 보유하고 있던 해외 정보력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졌다는 얘기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종합상사의 위기를 가져온 것은 외부적인 요인도 있지만 무엇보다 매출액 부풀리기에만 급급하고 수익성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한 상사 자체의 경영 행태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고 꼬집었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