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경제문제의 본질을 보자 .. 이창양 <KAIS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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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양
최근 우리 경제의 상황과 전망에 대해 안팎으로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수출 감소세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 등 주요 수출시장에서 중국 등의 맹렬한 추격으로 밀리고 있고,미래를 위한 뚜렷한 돌파구가 없는 상황에서 투자도 눈에 띄게 위축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주5일 근무제와 사회주의적 경제운용 등에 관한 논란이 엇갈리는가 하면,언론사 세무조사로 촉발된 분열현상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어려워져만 가는 경제를 보면 경제문제를 인식하고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에 중대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첫째,경제운용에 있어서의 도덕적 해이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경제위기 이후에도 정부와 공기업은 물론 민간기업까지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도덕적 이완현상이 지속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둘째,경제상황의 악화로 인한 국민적 고통 내지 그 파급효과의 심각성에 대한 불감증이 심화되고 있다는 우려다. 경제상황에 대한 몰가치적 진단과 일상화된 대응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셋째,전반적인 사회신뢰의 위기속에서 경제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우려다. 최근 일고 있는 사회주의적 경제운용 논란도 결국 이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경제운용에 있어 도덕적 해이는 경제운용 주도세력들이 자신의 역할 또는 의무를 다하지 않은 채 사회전체의 이익을 등한시하거나 경제를 사사로운 이익추구에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도덕적 해이는 크게 두가지 상황에서 주로 발생한다.
우선 지연 학연 등 능력이나 실적에 관계없이 경제운용 주도세력으로서의 자리가 보장되거나 나쁜 실적에 대해 핑계거리가 있을 경우이다.
또한 경제를 다른 목적을 위해 접근하는 경우이다.
만약 여당은 정치적 논리로 경제를 운용하고,야당은 여당에 대한 공격용으로 경제를 이용한다면 경제의 본질적 문제와 해법에 대한 고민은 기대하기 어렵다.
경제운용에 있어서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서는 우선 경제운용의 공과를 냉철히 평가하고 능력과 실적을 중심으로 경제운용체계를 재점검하면서 널리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이와 함께 미국 등 주요 수출시장의 경기에 대한 우리경제의 높은 의존도를 경제운용에 악용하지 말아야 한다.
매번 경기가 곧 나아질 것이라는 양치기 소년식의 전망을 내 놓을 수 있는 것도 결국은 해외경기에 대한 아전인수식의 가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며,그 전망의 오류에 대해서도 해외경기를 핑계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전인수식 전망이 되풀이되는 가운데 우리 경제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과 대응책 마련은 뒷전으로 밀리게 되는 것이다.
경제상황의 악화가 주는 사회적 고통 내지 파급효과에 대한 인식도 다시 가다듬어야 한다.경제는 경기순환에 의해 오르락내리락 할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으로 경제상황의 악화와 이의 장기화가 가져오는 심각한 고통을 외면하려 해선 곤란하다.
다소 이상적이지만 일하고 싶은 사람은 일할 수 있고,열심히 일하면 일정 수준의 생활과 자녀교육이 가능한 가운데 노후를 위한 약간의 저축이 가능해야만 희망이 있다.이는 지속적인 경쟁력을 갖춘 경제위에서만 가능하다.경제상황의 악화와 이의 장기화가 가져오는 국민,특히 서민들의 고통과 희망 상실,그리고 자녀교육 기회의 축소에 따른 사회적 격차의 문제 등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경제원칙에도 충실해야 한다.시장경제의 궁극적 목표는 공정한 경쟁을 통해 한정된 자원을 최대한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며,이를 위한 경제원칙은 정치논리나 사회정책적 논리와 달리 자기책임주의와 적자생존에 기반을 둬야 한다.
이제는 언제까지 4대부문 구조조정을 완결하고,언제부터 경기가 회복될 것이며,또 언제까지 경제불안 요인을 완전히 제거하겠다는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되풀이하기에 앞서 정치권과 정부가 합심해 왜 지금까지는 할 수 없었는지를 반성하고 모든 경제주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제시해 밀고 나가는 경제운용에 있어서의 도덕적 충실이 절실한 때다.
drcylee@kgsm.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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