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벤처 좀먹는 콘텐츠 도용

가을의 문턱에 접어든 테헤란밸리.게릴라성 호우에 젖은 거리는 쓸쓸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언제 이곳이 영광의 거리였던가 싶을 정도다. 대신 불황과 감원,사업정리와 같은 살벌한 용어만 판친다. 가뜩이나 힘들게 버티고 있는 요즘 벤처업계는 때아닌 '도용(盜用)'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콘텐츠를 허락없이 마구 갖다 쓰는 것이다. 이런 문제로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여성 포털사이트 W사가 한 예.이 회사의 팀장이 하소연을 담은 e메일을 기자에게 보내왔다. 내용인즉 다른 인터넷 포털사의 콘텐츠 도용으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는 것.회원수 40만명에 매출기반을 다진 이 회사는 신규 포털업체가 사이트를 연다며 간곡히 제휴를 요청해와 협약을 맺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가 생겼다. 협약서에는 제3자에게 콘텐츠를 양도할 수 없고 사전에 서면합의 없이는 이미 합의한 콘텐츠 이외의 다른 콘텐츠를 쓸 수 없다고 명시했지만 이 회사는 W사의 콘텐츠를 마음대로 긁어갔다. 게다가 W사의 제휴사 콘텐츠까지 자사 사이트에 올리며 자기네 콘텐츠인양 소개했다. W사는 5번이상 경고했지만 그때마다 그 회사는 '시간을 달라'고 사정하며 두달을 끌었다. 마침내 소송을 내겠다는 최후 통첩을 보냈고 그제서야 콘텐츠를 삭제했다. 하지만 두 달동안 W사가 입은 피해는 작지 않았다. W사의 담당 팀장은 "인터넷 포털은 힘들여 만들어 놓은 콘텐츠가 전재산인데 아무 거리낌없이 가져다 쓰는 풍조가 너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런 일을 당하는게 이 회사뿐이 아니라는 점이다. 비일비재하게 퍼져 있다는 것.남이 어렵게 구축한 콘텐츠를 몰래 갖다 쓰는 일은 지적 자산을 훔치는 도둑질이다. 한국의 인터넷벤처가 다시 일어서려면 수익모델 확보가 급선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먼저 해결돼야 할 것은 편법이 아닌,정도(正道)를 걷는 일이다. 이런 경영의식이 뿌리내리지 않으면 어렵게 구축한 사업모델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사상누각이 될 수밖에 없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기술과 아이디어로 정정당당히 승부하는 벤처정신이 다시 발흥돼야 할 때다. 서욱진 벤처중기부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