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투자문화 바꾸자] (기고) '불량품' 한국증시 .. 오이겐 뢰플러

오이겐 뢰플러 최근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 버클리대의 조지 에커로프 교수는 1970년 그의 역사적인 논문 '불량품에 의한 시장(The market for lemons)'을 냈다. 그는 이 논문에서 중고차 시장을 예로 들어 구매자가 중고차의 품질을 평가할 수 없다면 딜러가 부정직하게 차의 문제에 대해 알려 주지 않고 '불량품'을 팔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게 될 것이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구매자는 그러한 위험을 반영하여 가격을 낮출 것이고 양질의 차를 판매하려는 이들은 적정한 가격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더 이상 팔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에는 '불량품'들이 가격을 결정하게 될 것이란 주장이다. 에커로프 교수의 '불량품 이론'과 한국 주식시장과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한국의 주식은 할인되어 선진국의 유사한 주식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이유는 '불량품'의 문제에 있다. 한국시장에는 대우그룹의 분식 결산에서 볼 수 있듯이 '불량품'이 너무 많아 우량한 한국 기업마저도 '불량품'의 가격밖에 받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이런 할인현상에 대해 한탄만 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장의 결함을 처리하는게 유일한 해결책이다. 한국은 투명성과 정직성, 공정한 기업지배구조, 그리고 지속적이며 시장 지향적인 경제정책이란 세가지 기본적인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 예컨대 첫째 투명성의 경우를 보자. 기업의 대차대조표에 너무 많은 것이 숨겨져 있어 투자자들은 자신이 실제로 무엇을 매수하는지 알 수 없다. 한국 기업은 엄청난 위험을 안고 있지만 대차대조표에는 이러한 것이 나타나지 않는다. 자산은 올바르게 평가되지 않고, 많은 경우 대차대조표에 '거품'이 너무 많다. 둘째 기업 지배구조를 보자. 한국기업은 자회사 혹은 모호한 거래를 통해 일반 주주를 이용하는 지배주주로 유명하며 주주총회에서 주주의 입장이 효율적으로 반영되지 않는다. 셋째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및 시장 지향적인 정책에 있어서 아시아권 다른 국가와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발전을 보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1999년 주식시장의 활황으로 구조조정 작업이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긍정적인 환경에서 구조조정을 완료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했다. 현재와 같은 경제침체 상황에서 구조조정은 더욱더 고통스럽다. 정부가 구조조정을 포기했다고 하면 부적절하며 불공평한 평가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생존 불가능한 기업을 유지시키고 금융시장을 인위적으로 부양시키기 위해 정책을 내놓는 것은 시장기능에 따라 해결하려했던 종전의 입장과는 확실히 다른 것이다. 상장 기업의 3분의 1이 이자보상비율 1 이하라는 한국은행의 조사 결과가 있다. 상장 기업의 3분의 1이 생존 불확실한 기업이란 뜻이다. 이들 기업의 영업이익은 부채상환은 말할 것도 없고 이자 비용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국의 주식시장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세계적 수준의 기업도 적지 않다. 그 중에는 세계시장에 노출되지 않고 국내에서만 활동하는 기업도 많다. 또한 한국 경제에 있어서 가장 긍정적인 면 중의 하나는 상대적으로 성장가능성이 큰 매수기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즉 잠재적 소비능력을 가진 소비자들이 소비를 선도하여 내수(catch-up demand)를 이끌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불량품 시장에 대해선 한국의 투자자들도 어느 정도의 책임을 져야 한다.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순식간에 돈을 불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배워야 한다. 단기간의 투기로는, 매우 운이 좋은 소수의 사람이나 증시를 조작하는 범죄자들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손실을 보게 되어 있다. 불행하게도 한국에서는 증시 조작이 흔히 일어난다. 주식 투자의 이익은 인내심과 위험을 감수하는 의지로부터 나온다. 한국은 최소한의 시장안정을 담보할 수 있는 장기투자의 기반이 없다. 개인 뿐만 아니라 기관투자자들도 분위기에 따라 과매수와 과매도하기 일쑤다. 이런 태도는 시장의 불안정을 초래할 뿐 아니라 훌륭한 투자 수익을 내는 데에도 방해가 된다. 아무리 약삭 빠르고 영리한 사람이라도 성공적으로 투자의 타이밍을 맞출 수 없다. 한국은 최소한의 시장안정을 담보할 수 있는 장기투자의 기반이 없다. 개인뿐만 아니라 기관투자가들도 분위기에 따라 과매수와 과매도하기 일쑤다. 모든 사람이 싸게 사서 비싸게 팔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러한 전략만을 좇다가는 정반대의 결과에 이르게 된다. 투자 문화를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