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증권집단소송 신중히 .. 金相圭 <한양대 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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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소송제도는 수년 전부터 도입 여부에 대한 논의가 지루할 정도로 계속돼 왔다.
논의의 초기와 달리 제도의 전면적인 도입에 따른 부작용과 기존 법체계와의 부조화 등을 이유로 요즘은 증권과 관련한 부분에 국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피해액이 사소하더라도 소송을 통해 손해를 배상받을 수도 있지만,'재판'은 쉽게 떠오르지 않고,설령 이를 떠올린다 해도 제소하는데는 여간 주저하지 않는다.
소송수행에 따른 비용,시간 등을 생각할 때 크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피해를 본 자가 많은 경우 누군가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면 다른 피해자들도 이에 따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을 고려한 것이 집단소송제도다.
증권집단소송은 증권거래 등과 관련, 손해를 본 사람이 소송을 제기하고 그 결과는 소송에 참여했는가를 묻지 않고 같은 이유로 손해를 본 사람 모두가 배상받을 수 있는 제도다.
이 점에서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의 재판받을 권리를 빼앗는 것으로 위헌적 요소를 안고 있다.
증권집단소송제도의 도입을 주장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를 들고 있다.
다수의 소액피해자들이 효과적으로 구제된다는 점,가해자가 피해자 개개인에 대해 응소해야 하는데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며,협상에서의 창구가 단일화된다는 점,기업의 경영에서 소비자 투자자들로부터의 소송거리를 미리 제거하는 노력을 기울이게 돼 경쟁력이 강화된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좋은데도 많은 대륙법계 국가들이 이 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또 그렇게 좋은 제도인데 우리는 왜 유독 증권관련 부분에만 도입하려는지 알 수 없다.
좋은 제도일 수는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문제점도 있기 때문이며, 나라마다 다른 법문화나 기업문화에 따른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역시 피해자는 피해액의 다소를 불문하고 개별적인 소송을 통해,또 피해자가 다수인 경우 선정당사자제도나 공동소송제도를 이용해 구제받을 수 있다.
이러한 제도가 번잡스럽다면 그 안에서의 해결책을 찾아보는 진지한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다수의 피해자들이 효과적으로 구제된다지만,어차피 소송에 무관심한 사람에게는 집단소송도 별 효과를 주지 못한다.
소액이어서 기왕의 소송제도를 이용하지 않는 자가 집단소송에서 승소한다하여 피해액에 대한 보상을 적극적으로 주장한다고만 볼 수 없다.
미국의 경우 피해자가 손해를 본 만큼 배상받을 수 있다는 환상은 실제 배상액이 극히 적다는 점에서 깨지고,배상액의 30% 이상이 변호사비용이었다는 점은 과연 피해자의 보호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측면의 다른 한편에는 소극적 기업활동이나 기업경영을 초래하며,피해자들의 이익보호라는 뒷면에는 집단소송제도를 두고 있는 미국에서조차도 '합법적인 공갈수단'이라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더욱이 소송의 남용 등으로부터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법까지 제정한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또 자산규모 2조원 이상의 기업에만 적용하기 때문에 대상기업이 적다는 점을 들어 반대론을 무마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발상의 근저에는 가진 자는 부도덕하다는 생각이 뿌리 깊이 박혀 있음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내로라 하는 기업의 상당수는 외국인지분율이 50% 안팎이라는 점에서 볼 때 종전의 재벌을 보는 눈으로 기업을 보는 입장도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대상기업수가 적다는 이유를 드는 것은 제도 도입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도 자신있게 말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의 차이는 제도를 도입할 때도 필연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또 기존 틀과의 균형을 생각해야 한다.
보약도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맞아야 하고 또 적당한 수준에서만이 의미를 갖는다.
증권집단소송 역시 우리 법문화나 기업문화에 걸맞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ksk0529@hiware.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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