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아슬아슬한 해, 2002 .. 김진애 <건축가>

김진애 그 많은 사건들이 있어도 세상이 여전히 굴러간다는 것은 어쩌면 신기한 일이다. 2001년에 국내적으로는 유독 '오리무중'적인 사건들이 일어났고 국외적으로는 '일파만파'적인 충격적 사건들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굴러가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든 굴러가리라 막연하게만 믿다가는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이일 하나쯤은, 이 사건 하나쯤이야, 이 정도 돈쯤이야'하다가 '어떻게 되겠지, 경제와 외교는 누군가 챙기겠지, 국방은 어디선가 알아서 지키겠지'하다가는 언제 어디에서 큰 사건이 터질지 모르는 것이다. 2001년에 일어난 수많은 사건들 중에서도 '아르헨티나 모라토리엄'과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정권 붕괴'는 세상 돌아가는 것을 외면하다가 나라 전체가 와해된 사건으로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아르헨티나처럼 그렇게 잘 살던 나라가 어떻게 반세기만에 썪고 썪어 그렇게 무능하고 자리멸렬해져 맥없이 붕괴될 수 있는가. 아프간은 민생이 어떻게 피폐해가든 상관없이 정권을 지키겠다고 그렇게 기를 썼는데 외교적 힘이나 군사적 힘, 경제적 힘 모두 그토록 빈약하기 짝이 없었을까. 게다가 국제적으로는 얼마나 냉정하던가, 채권국이나 채권기관들은 아르헨티나 사태에 동정의 여지가 없고, 종교적으로 상통하는 듯 싶던 아프간의 이웃 나라들도 결국은 자기 나라의 이해에 따라 움직이지 않던가. 정권놀이 하던 정치권들이 '골목대장,우물안 개구리' 노릇하다 결국 나라와 국민을 구렁텅이로 빠뜨린 것 아닌가. IMF위기를 겪었기에 아르헨티나 사태에 가슴을 쓸어 내리게 되고, 국제 무력사건에 관련되어 북한의 이름이 조금이라도 거론될 때마다 가슴이 두 방망이질 치게 되는 것이 대한민국 국민의 어쩔 수 없는 심정일 것이다. 이 와중에 새해를 맞은 국민들의 심정은 대체로 아슬아슬할 것이다. 테러나 전쟁 사태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가 대공황의 벼랑에 떨어지지는 않아 다행스럽기는 하지만, 초강대국 미국의 '전쟁의해'를 선언해 불안해진다. 도대체 다음 불똥은 어디로 튈 건가. 월드컵 축구대회라는 세계 축제가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열리지만 테러의 위협없이 치르기를 바라고, 경기의 결과에 관계없이 주최국으로서 일본에 처지지 않는 세련된 운영을 성공적으로 해내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무엇보다도 극도로 정치화된 우리 사회에서 두번의 큰 선거가 있으니 어찌 아슬아슬한 심정이 되지 않으랴. 행정 공백이나 선심성 사업도 걱정이려니와, 정권 창출에 얽매일 정치활동 때문에 신문과 방송들이 정치 공방을 국민 게임으로 만들지나 않을까, 나라의 모든 활동이 '정치성향화'하여 오직 '선거에서의 승부'만이 중요한 일인 양 몰아가지나 않을까, 그 와중에 나라 경영의 뿌리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흔들리지 않을까 아슬아슬하다. 그러나 원론적인 관점으로 보면, 정치일정이란 한번 제도화되었으면 국제정세나 경제사정에 관계없이 지속되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나라의 내공이 이런 일정을 충분히 소화하고도 남음이 있을지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지만, 지금으로서는 다른 방도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원칙론이 지켜지기를 기대할 수 밖에 없다. 부디 나라의경영이 '그들만의 정치 리그'에 의해 흔들리지 않기를, 나라 경영의 허리 역할을 하고 있는 관료들이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소신을 가지고 일을 추진하기를, 기업들이 정치 게임에 관게없이 경쟁력있는 상품을 개발하고 기술 투자를 계속 하기를, 자기 자리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가장 소중한 일로 가치있게 만들기를... 한가지 올해에 기대되는 것이 있다. 아슬아슬한 올해를 아주 슬기롭게 보낸다면, 수많은 공약이 나타날 올해에 국민과의 약속이 아주 바르게 지켜진다면, 분명 우리나라는 또 다른 발전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2002년, 아슬아슬하지만 그만큼 중요하다. jinaikim@seoulforu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