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채권단의 '갈팡질팡'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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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개선작업(Workout)은 말 그대로 떨어진 기업가치를 높이는 일이다.
부도난 기업이나 부도위기에 몰려 있는 기업에 금융회사들이 각종 지원을 해줌으로써 위기를 이겨 나가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워크아웃이다.
워크아웃을 적용받는 기업들의 경우 여러 부실요소가 오랜 기간 누적돼 왔기 때문에 이를 고치려는 작업도 비교적 장기간 진행된다.
워크아웃기업의 부채 상환이 5~6년동안 늦춰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워크아웃기업에 이같은 장기플랜이 필요한 것은 자금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경영도 그렇다.
기업개선작업을 가장 잘 이끌 것으로 기대되는 최고경영자가 긴 안목으로 접근하도록 채권금융회사들이 유도해 주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정반대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신호제지가 대표적인 사례다.
신호제지 채권금융단은 최근 열달동안 신호제지 사령탑을 세번이나 바꿨다.
지난해 3월 공채과정을 거쳐 기준(奇浚)전 대산석유화학단지 구조조정본부장을 신호제지 대표이사로 영입했다.
기 대표가 석유화학 전문가이긴 하지만 동시에 구조조정 전문가라는 점을 높이 샀다.
채권단은 그러나 기 대표를 지난해 11월12일 현대석유화학 최고경영자로 보내고 내부인사를 대표이사에 발탁했다.
이번엔 제지 전문가가 사령탑에 앉아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채권단은 두달도 채 못된 지난해 12월말 신호제지 대표이사를 신추(辛湫)전 현대택배 이사로 교체했다.
추진력이 뛰어난 경영인이 워크아웃기업의 경영을 맡아야 한다는 논거였다.
경영이 이처럼 불안하니 신호제지에 대한 구조조정도 제대로 진행될 리 없다.
채권단은 추가 채무조정을 해주어야 할지,회사를 분할해 매각해야 할지 갈피를 못잡고 있다.
워크아웃은 해당 기업만 득보자는 것이 아니다.
은행들은 원리금도 상환받고 출자전환으로 생긴 주식도 높은 가격에 팔아보자는 것이다.
워크아웃기업 경영에 대한 채권단의 주먹구구식 및 근시안적 접근태도는 채권단 자체의 이익을 갉아먹을 수도 있다.
박준동 산업부 벤처중기팀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