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선자령'] 눈꽃터널 지나 능선 오르니 사방이 온통 '雪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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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물러서기 시작했다.
여울목 물살처럼 능선을 타고 넘는 바람의 윤곽이 뚜렷했다.
저만치 빵긋했던 쪽빛 하늘이 순식간에 트였다.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부셨다.
바람소리도 잦아들었다.
온세상이 우르르 들고 일어서는 것 같았다.
고운 은가루를 흩뿌린 듯한 순백의 화사함.
비현실의 문턱을 넘어선 듯 했다.
선자령(仙子嶺.1천1백57m)에서의 눈꽃트레킹, 자연의 흰 눈이 빚어낸 공간에서의 그 몽환적 걸음걸음은 3시간 내내 이어졌다.
선자령은 강원 평창군 도암면과 강릉 성산면의 경계를 이루는 백두대간상의 봉우리.
영동과 영서의 관문인 대관령(8백32m) 아흔아홉 구비 위쪽에 자리하고 있다.
눈 많고 바람 심해 한국의 히말라야로도 불리는 이곳은 한겨울 눈꽃트레킹 1번지.
어린아이들도 따를 정도로 완만한 트레킹코스가 매력을 더한다.
트레킹은 새로 뚫린 영동고속도로로 인해 폐쇄된 대관령휴게소(하행선)에서 시작된다.
휴게소 뒤편 평창국유림관리소 대관령경영단을 지나 20분쯤 걸으면 대관령서낭사와 산신각이 나온다.
고려초 태조 왕건과 왕순식이 후백제의 신검을 칠 때 도와주었다는 꿈속의 두 산신을 모신 곳.
강릉단오제(중요무형문화재 13호)의 중요행사인 서낭부부 봉안의식의 출발지점이다.
산신각 옆 낮은 비탈을 거슬러 다시 만나는 큰 길 끝은 강원항공무선표지소.
원반형 우주선 형상의 구조물이 기묘하다.
강원항공무선표지소 바로 밑 왼편으로 한줄기 눈길이 보일락말락 밭고랑처럼 뻗어 있다.
본격적인 선자령트레킹 길이다.
양옆 나뭇가지마다 핀 눈꽃이 소담스럽다.
포근한 솜이불처럼 경사면을 덮은 눈은 ''바람의 선자령''을 무색케 한다.
여유만만한 걸음으로 40여분.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인다.
내려 보이는 키 작은 나뭇가지 위의 눈꽃이 올록볼록 사방으로 펼쳐진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트레킹객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진다.
그 너머 오른쪽으로 휘어오르는 길.
나무하나 없는 설원이 왼편 아래로 타원형의 호를 만들며 내리닫는다.
맞은편 산줄기는 한폭의 수묵화.
쪽빛 하늘과 어울린 눈덮인 선자령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두번째 포인트다.
안개만 아니라면 바로 위 정상에서의 전망도 놓칠수 없다.
북으로 곤신봉 노인봉, 남으로 능경봉 발왕산이 우뚝하고, 동으로 한눈에 들어오는 드넓은 바다가 선자령 눈꽃트레킹에 방점을 찍는다.
평창=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