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비서들의 현장토크] 얼굴보다는 능력 + 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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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 빠진 몸매와 방긋 웃는 얼굴,상냥한 목소리..."
많은 사람들이 "여비서"하면 떠올리게 되는 선입견이다.
물론 비서가 되려면 외모도 깔끔해야 한다.
하지만 이건 비서에게 요구되는 조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비서란 누구보다 민첩한 몸놀림과 빠른 사리판단을 갖춰야 하는 "경영자의 손발"이다.
때문에 겉보기엔 가냘플지 몰라도 속은 강철로 만든 듯 심지가 굳어야 한다.
20세기 최고의 경영자로 불린 잭 웰치 전 GE 회장의 성공신화 뒤에는 수십년을 한결같이 보좌한 여비서가 버티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상사의 눈빛만으로 회의가 길어질 지,짧아질 지를 알아챌 수 있는 "노련함"과 상사가 술 마신 다음날 아침엔 꿀물을 준비하는 "센스",그리고 때로는 거침없는 직언을 올릴 수 있는 "배짱"을 동시에 갖춘 "수퍼 커리어우먼"들.이 정도라면 가히 "전문비서"라고 부를 만하다.
10년 이상 전문 비서의 길을 걷고 있는 선배와 전문비서의 꿈을 안고 부지런히 뛰고 있는 후배 등,모두 7명의 비서가 한 자리에 모여 "비서도"(秘書道)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 척보면 알아야죠
-회사에서 7.4제(오전 7시 출근,오후 4시 퇴근제도)를 실시했을 때 경기도 남양주에 살았어요.
지각 안하려고 매일 새벽 4시45분에 일어났죠.아침에 하루를 여유있게 준비해야 실수하지 않는다는 게 제 신념이예요.
덕분에 입사 13년 차인데 한 번도 지각한 적이 없어요.
출근길 차 안에서 그날의 할 일과 상사의 스케줄을 머릿속에서 정리하는 게 버릇처럼 됐죠.
-비서의 필수 요건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에요.
물론 외국어도 여기 해당되지만 영어 잘하는게 전부는 아녜요.
회사 경영상황을 잘 파악하고 상사에게 시의적절한 조언을 할 수 있어야 제대로 비서 역할을 할 수 있죠.
-차 나르고 전화받는 게 비서의 일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곤란해요.
상사가 자잘한 일에 신경쓰지 않고 경영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주변 일을 모두 관리해야 하거든요.
때문에 왠만한 일은 알아서 처리할 수 있는 판단력과 융통성이 필요합니다.
-상사를 귀찮게 할 사람인지,아니면 꼭 만나야할 사람인지 척 보면 대강 가려낼 수 있어요.
전화로 상대방이 "음.나 누군데"라고만 해도 어떤 사람인지,무슨 용건으로 연락했는지 감이 오죠.유명인사를 사칭하는 경우도 금방 알아차려요.
이런 경우 일단 접견실로 안내한 후 사실을 확인합니다.
-외국계 회사 상사들은 전문비서에 대한 인식이 확고한 편이예요.
비서가 조직운영이나 프리젠테이션에 대해서도 조언해주기를 바라죠.하지만 그만큼 책임도 커요.
대충대충 빨리하는 것보다 늦더라도 실수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해요.
실수를 안하기 위해서 한달전 6개월전 1년전 스케줄도 미리미리 짜놓는 치밀함이 필요합니다.
-비서는 시간이 많은 것 같아도 여유는 별로 없는 직업이예요.
상사가 출장중일 때 남들은 "방학했네"라고 부러워하지만 실상은 안 그래요.
오히려 윗분이 없다는 이유로 더 긴장하고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전 신혼여행 때 빼고는 한번도 장기 휴가 가본 적이 없어요.
지금 임신 상태여서 처음으로 3개월 휴가(출산휴가)를 가질 예정인데 막 떨리네요.
-저도 상사가 휴가나 출장을 가시면 더욱 더 회사를 뜨지 못해요.
윗분이 불안해 하시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휴가도 상사와 엇갈리게 가죠.
-비서의 힘든 점은 오로지 한 명에게 초점을 맞춰야한다는 사실이예요.
쉬울 것 같아도 어려운 일이죠.또 일을 해도 결과에 눈에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힘들죠.하루 종일 열심히 일했는데도 일과가 끝나면 "내가 뭐했지"라는 생각에 의기소침해지기도 해요.
누가 농담처럼 "하루에 차를 몇 잔이나 나르냐"고 물을 때면 정말 속상하죠.
## '찰떡궁합' 보스와 비서
-보스와 비서는 궁합이 잘 맞아야 해요.
마치 부부처럼요.
경영자 옆에서 그 분이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고 위기를 넘기는 과정을 볼 때면 내가 경영자인 양 뿌듯해지기도 합니다.
상사와 일반 직원들 사이에 완충작용을 해냈다고 생각될 때는 성취감도 느끼죠.퇴직금을 놓고 노사갈등이 생겼을 때 통역자로 협상 테이블에 참석했다가 중재자 역할까지 했을 때 그랬어요.
-비서 일을 자기 이름으로 진행되는 게 없어요.
모두 상사의 "얼굴"을 세우는 일이죠.그래서 더욱 일을 소홀히 할 수 없어요.
"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나중에 내가 옮겨도 나를 따라와주겠냐"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기뻤죠.비서의 역량을 키우는 건 전적으로 상사에 달렸어요.
잘만 활용하면 엄청난 "비밀병기"가 될 수 있는 반면 방치하면 그야말로 "꿔다놓은 보릿자루"죠.
-아주 작은 부분에서 뿌듯함을 느껴요.
예를 들어 경조사 때 부조금 액수과 꽃 종류를 결정하는 일도 초기엔 "얼마나 할까요"하고 일일히 여쭤봤는데 이제는 도리어 상사가 "이런 경우엔 어떻게 할까"하고 제게 물어보시죠.
-회사의 홍콩본사 사장께서 제가 보낸 리포트를 보고 칭찬하면서 "다른 지역 비서들이 한국 000와 비교돼 "무능하다"고 평가될까봐 두려워한다"는 말을 제 상사께 전한 적이 있어요.
정말 감격했고 제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어요.
## 茶야? 車야?
-비서는 잘하면 본전이라고 해요.
바쁜 고위직 임원들과 보조를 맞춰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주요 사업 상대방에게 결례를 저지를 수도 있기 때문에 실수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스케줄은 두번 씩 확인하는 게 기본이죠.그래도 한 번은 상사께서 회의중에 "문 시장님 연결해요"라고 말했을 때 본인이 의도하신 대구 시장이 아니라 부산 시장께 전화를 걸었다가 크게 당황한 적이 있어요.
지역번호를 잘못 알았는데 공교롭게 두 분의 성이 같아서 생긴 일이죠. -저도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지른 적이 있어요.
언젠가 상사께서 전화로 "차 좀 부탁해"고 말씀하셨죠.그래서 얼른 차를 타서 가져가고 있는데 갑자기 문을 열고 나오시더니 "차,밑에 대기해놨지"하시는 거예요.
순간 무척 얼떨떨했어요.
-한번은 "A사장께 전화를 연결하라"고 하셨는데 갑자기 전화번호가 또렷이 기억나는 거예요.
그래서 혼자 뿌듯해하면서 기억한 대로 번호를 눌렀더니 비서 대신 남자분 목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그래서 "어머,직접 받으셨네요"하고 얼른 사장님을 바꿔드렸죠.그런데 사장님이 "어,자넨 B과장이 아닌가"하며 놀라시는 거예요.
알고 보니 "9번" 누르는 걸 잊는 바람에 사내 직원과 연결됐던 거죠.
## 자나깨나 '입조심'
-비서는 반드시 입이 무거워야 해요.
비서란 명칭에는 비밀(秘)이란 글자가 들어있다는 점을 명심해야죠.내가 하는 말이 "회장실 견해"로 와전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언제나 말조심 하라고 후배들에게도 일러주곤 해요.
-사내에선 비서의 역할을 잘 아는데다 사장님을 의식해서 인지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제게 궂은 일이나 까다로운 부탁은 잘 안하죠.하지만 외부 사람들은 무례한 경우도 종종 있어요.
어떤 분들은 다짜고짜 반말을 써서 황당하게 만들죠. -회장이나 사장 비서라면 일단 주위에서 어려워하죠.그래서 외로운 직업이 되기 쉬워요.
하지만 상사가 높다고 해서 제가 높은 건 아니잖아요.
덩달아 우쭐해서 건방지게 행동할 수 있는데 이런 부분을 조심하려고 스스로 노력합니다.
-대학에 다닐 때 부터 전문비서가 되고 싶었어요.
"내 상사를 훌륭한 경영인이 되도록 보필한다"는 건 멋진 일이잖아요.
고위층만 상대하다 보니 사람보는 눈도 높아지게 마련이죠.하지만 시집가기 전에만 대강 하고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절대 없어요.
작년엔 사내 비서들기리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자는 의미에서 소모임을 주도해 만들었어요.
친목 도모 뿐 아니라 서로 경험담을 공유하면 업무에도 훌륭한 정보가 되거든요.
단순히 수다떠는 차원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간 되는대로 무의탁 노인들을 방문하는 등 봉사활동에도 나서고 있어요.
고성연.정지영 기자 amaz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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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석자 약력 ]
이선영(44)
한국로버트보쉬기전주식회사 과장.이화여대 영문학과 졸업.독일 자동차부품회사 보쉬의 한국법인인 한국로버트보쉬기전주식회사 요하네스 로허 부사장 비서로 재직중.81년 프랑스 제약회사 한국롱플랑에서 시작해 CGE알스톰,GS인스펙션 등 외국계기업에서만 23년째 비서로 재직중이다.
박찬미(35) 삼성생명 과장.
성신여대 식품영양학과 졸업.1990년부터 13년째 삼성생명 이수빈 회장 비서로 재직중.이 회장은 92년 대표이사 사장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3년간 그룹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이때 박과장도 함께 이동했을 만큼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
현재 삼성그룹 내 비서교육 강사로 활동중이다.
(홈페이지;myhome.naver.com/kingseft).
김기정(29) 주한 코트디브와르 대사관 비서.
인하대 불문학과 졸업했고 현재 서강대 경영대학원 재학중이다.
숙녀복업체 구매담당자(MD)로 일하다가 3년전 대사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주은(28) WPPMC코리아(광고대행사) 사장 비서(대리).
이화여대 비서학과 졸업.교보생명 비서실을 거쳐 3년째 WPPMC에 재직중이다.
함주은(26) 대우증권 사장 비서.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졸업.대우증권 강남사업부장 비서를 거쳐 1999년부터 사장 비서로 재직중이다.
이정미(25) 한화유통 사장 비서.
2000년 12월 한화유통에 입사했고 비서로 일한 지는 6개월 됐다.
한화유통은 전문비서를 두지 않고 대졸 사원 가운데 한명을 뽑아 2~3년간 비서실에서 근무케하는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김미영(22) LG전자 백우현사장(CTO) 비서.
경력 1년4개월.2000년 12월 SK텔레텍에서 비서업무를 시작했고 6개월 전 LG전자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