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봄을 느끼고 나무를 느끼고..李柱香 <수원대 교수.철학>

부활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우리는 나무를 심었다. 물푸레나무 잣나무 진달래…. 전날 비가 온데다 그날은 햇살도 넉넉해서 땅은 폭신했고 향긋했다. 바람을 타고 전해오는 비릿한 풀향기에 내 얼굴도 긴장을 푼다. 늘 긴장하고 살아가는 도시의 얼굴들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자태를 한껏 뽐내는 개나리와 진달래,이 때만은 온천지가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듯 흐드러지게 핀 화사한 벚꽃….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산에는 꽃이 핀다고 천지가 봄이다.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소리조차 봄이 되는 산이다. 북한산이다. 착한 기(氣)로 서로 소통하는 느낌은 소중하다. 부활은 어쩌면 내 속에 갇혀있는 내가 열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열리면서 햇살을 느끼고,흐르는 물의 감촉을 느끼고,나무를 느끼고,봄을 느끼고,다른 사람의 마음결을 느끼는 것인지도. 생명의 역설이 있다. 다른 생명을 느낄 때 그 때에만 우리가 생명임을 느낀다는 것이다. 찬란한 햇살이 좋아 창문을 열 때,흐르는 물에 유혹돼 손으로 물을 떠먹을 때,당신이 그저 좋아 내 마음이 콩닥콩닥 설렐 때 우리는 살아 있음을 느낀다. 생기로 충만한 생명은 차별이 없다. 생명은 서로 통해 있으니까. 햇살 없이는 나무가 자랄 수 없다. 물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생명은 없다. 바람 없이는 꽃이 피지 않는다. 그러니까 여리디 여린 진달래 꽃잎에도 하늘과 땅과 물과 바람과 햇살이 들어 있는 것이다. '나'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생각해 보면 '나'를 '나'이게 만든 것은 모두 '나' 바깥의 생명들이다. 땅을 파고 나무의 뿌리를 묻으면서 우리는 기도했다. 이 나무들이 부디 잘 자라게 해주십시오. 자라서 해를 보고 바람을 느끼고 그리하여 꽃을 보고 열매를 내게 해주십시오. 단순한 기도가 절박했던 건,기도하는 그 땅이 불안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수도권 시민들의 허파 노릇을 하는 북한산에 왕복 8차선이나 되는 도로를 뚫으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산은 국립공원이다. 왜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던 것일까? 자연생태계를 잘 보존해서 다음 세대에게도 물려주겠다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국립공원을 지켜야 할 정부가 앞장서서 북한산뿐 아니라 노고산 불암산 수락산까지 꼬치 꿰듯이 뚫겠다니 이 무슨 난리인가? 지금 북한산에선 수경 스님이 기도하고 있다. '우리 사는 것 자체가 만 생명의 은혜'라고,'그것을 삶으로 느껴야 한다'는 수경 스님을 아는가? 30년간 오로지 참선수행만을 해온 그가 세상으로 나온 까닭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 만큼이나 어렵지만,천막으로 만든 그의 기도도량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그 도량은 터널의 입구가 될 곳이라고 한다. "동산 하나 넘어지는 게 이렇게 쉬운 줄 몰랐습니다. 폭약 몇번 터뜨리고,포크레인으로 이틀 시끄럽고 나니까 산 하나가 없어졌어요. 그와 함께 죽어간 생명들을 생각하면 그저 기도하지 않을 수 없어요" '바로 저기가 예쁜 동산이 있었던 자리'라고 가리키는데,시뻘건 흙더미와 돌더미가 흉물스러울 뿐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 흉물스러움을 치유하기 위해 부활절날 그는 나무를 심었고 우리는 거기에 동참했다. 작은 봉우리가 5백여명의 마음으로 꽉 찼다. 북한산 문제는 우리를 바로 보는 문제다. 돈만 되면,편리한 생활만 되면 뭐든 괜찮다는 그 탐욕스런 마음을 떨쳐버리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산과 들은 몸살을 앓을 것이고,마침내 모든 국민은 30층이 넘는 아파트에서 자연과 담쌓고 문명의 바벨탑만을 쌓으며 살아갈 것이다. 마른 몸이지만 꼿꼿한 정신을 느낄 수 있는 산승이 산을 대신해 속울음을 감추며 외마디를 던진다. "봄은 불입니다. 그 화기가 봄비를 만나 싹을 틔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불을 주체하지 못해 화를 자초하고,어떤 이는 그 불씨마저 죽이고 염세의 나락을 헤맵니다. 나는 지금 상처입은 짐승입니다. 봄물이 오르지만 이미 몸통이 잘려버려 꽃은 고사하고 잎 하나 피울 수 없는 나무들 앞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립니다" 이 작은 눈물이 땅에 스미고 바람에 날려 뭇정신에게로 번져가기를 기원해 본다. jhlee@mail.suw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