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금융읽기] 난기류에 빠지고 있는 세계금융시장

세계금융시장이 난기류에 빠질 조짐이다. 이달 들어 세계평균주가는 4% 정도 떨어졌다. 특히 미국증시의 경우 다우와 나스닥 지수가 각각 5%,10% 급락했다. 한동안 안전통화 역할을 담당해온 미 달러화 가치도 약세조짐이 뚜렷하다. 미 달러화 가치는 이달 들어 세계 모든 통화에 대해 4% 정도 떨어졌다. 반면 국제 금값과 원유가격은 각각 1.5%,3%가 올랐다. 세계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질 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올 들어 예상보다 빠른 회복세로 기대감이 확산됐던 세계금융시장이 최근 갑자기 이같은 모습을 보이는 원인은 무엇일까.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이 이뤄지고 있으나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글로벌 추세에 맞는 인프라가 갖춰지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국제기구들도 실질적으로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국제금융시장의 안전판인 국제통화기금(IMF)은 자기책임의 원칙을 내세워 아르헨티나 사태 등에 방관자적 자세다. 세계무역기구(WTO)도 회원국간에 늘어나는 무역분쟁에 대한 조정력과 구속력이 크게 약화되고 있는 상태다. 그동안 국제기구를 대신해 세계금융시장의 구심점 역할을 담당해온 미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것도 원인이다. 대표적으로 미국이 90년대 초에 이어 무역수지와 재정수지가 동시에 적자를 보이는 '쌍둥이 적자(twin deficit)' 시대에 접어든 점을 들 수 있다. 그만큼 안전한 국가(safe-haven country)로서 미국의 위상이 약화되고 있는 셈이다. 반면 미국을 대신할 수 있는 뚜렷한 대체국가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유럽은 프랑스 조스팽 총리의 패배로 좌파에서 우파로 급선회하는 추세다. 아시아 지역은 일본경제가 장기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과의 주도권 확보경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고 엔저 정책으로 아시아 국가간의 통화마찰도 불거지고 있다. 기존의 글로벌스탠더드도 허구성이 속속 드러나면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심화되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의 신뢰도가 떨어진 지는 이미 오래됐다. 각종 기업수익 평가와 회계제도 등 증시관련 인프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국제관계에 있어서는 그 어느 때보다 협력이 요구되고 있으나 세계 각국의 경제이기주의와 미국의 일방주의,개도국들의 소외감 등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세계 경제현안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런 여건에서 세계경기 회복의 질이 종전보다 떨어지고 통계적 착시현상(illusion)도 커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올 들어 빠른 회복세를 보인 세계경제는 경제주체들의 캐시 플로(cash-flow,자산-부채상황) 희생의 대가다. 신용대출과 레버리지 비율이 올라감에 따라 경제주체들의 캐시 플로가 지난해보다 악화돼 경기가 회복되면서 캐시 플로가 개선되는 과거의 회복기와는 분명히 구별된다. 한마디로 돈을 갖고 있는 투자자들이 믿고 투자할 만한 신뢰체계가 무너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눈여겨 봐야 할 것은 각종 글로벌 펀드들이 안전자산을 선호(flight to quality)하는 쪽으로 투자성향이 바뀔 조짐을 보이고 있는 점이다. 따라서 '국제금융읽기'를 통해 지난해 9·11 테러 이후 올 1·4분기까지 주식과 채권비중을 7 대 3으로 주식보유 비중을 늘려갈 것을 추천해 왔으나 앞으로는 그 비중을 5 대 5 정도로 채권비중을 다소 늘려갈 것을 권고한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세계금융시장의 불안감을 동시에 안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시장을 안정시켜야 할 정책당국자가 나서서 시장에 충격을 줄 발언과 행동으로 금융시장의 불안감을 심화시키는 느낌이다. 중앙은행 총재가 금리인상 시기를 못박는 듯한 발언을 한다든가 경제부총리가 동일한 문제에 대해 이중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정책당국자의 역할은 시장이 제 기능을 잘 할 수 있도록 '제도적 틀(institutional framework)'을 갖추는 데 충실해야 한다. 요즘처럼 시장에서 활동하는 경제주체들의 자율적인 경쟁행위까지 간섭해서는 시장을 안정시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정책당국자의 신뢰까지 떨어지는 자충수에 빠질 우려가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결국 난기류에 빠지고 있는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서는 신뢰회복이 우선돼야 한다. 새로운 환경에 맞는 국제기구 기능의 재정립과 글로벌스탠더드가 마련돼야 하고 국제협력체계도 강화돼야 한다. 세계경기도 경제주체들의 캐시 플로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회복돼야 할 것이다. 논설·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