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협상전선] (27) 꼬여가는 하이닉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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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2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국내외 언론의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한 미국인이 입국장을 빠져 나왔다.
주인공은 로버트 루빈 미국 씨티그룹 회장.
루빈 회장은 한국에 머무는 동안 김대중 대통령을 예방한 것을 비롯 진념 당시 경제부총리와 정건용 산업은행 총재 등을 만났다.
눈길을 끈 것은 박종섭 당시 하이닉스 사장과의 면담.
방한 이틀째인 10월23일 하이닉스의 재정주간사인 살로먼스미스바니(SSB.씨티그룹의 자회사) 관계자들과 함께 서울 신라호텔에서 박 사장을 만나 오찬 회동을 가졌다.
그로부터 40여일이 지난 작년 12월3일.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와 하이닉스는 "두 회사가 전략적 제휴를 모색하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전략적 제휴에는 합병이나 주식맞교환 방식이 포함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구체적인 제휴 방안을 놓고 협상에 들어갔다.
두 회사가 밀고 당기기를 지속한 지 5개월여가 지난 4월30일.
하이닉스 이사회가 우여곡절 끝에 매각 양해각서(MOU)를 부결시켜 버리자 미국 언론들이 '총대'를 메고 나섰다.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AWSJ)은 "마이크론의 협상 참가자들이 하이닉스엔 협상을 타결시킬 만한 인재가 없다고 보고 있다"고 혹평했다.
포브스지는 한 술 더 떠 "하이닉스가 마이크론의 인수 제안을 거부한 것은 사망신고서에 스스로 서명한 것"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일부에서 거론되는 '루빈과의 밀약설'은 논외로 치더라도,하이닉스 인수협상에서 보여준 미국 정부와 마이크론 및 언론의 태도는 하이닉스를 헐값에 접수하기 위해 똘똘 뭉친 모습 그대로였다.
이에 비해 한국측은 너무나 오합지졸이었다.
정부와 채권단은 물론 하이닉스와 하이닉스구조조정특별위원회가 따로 놀았다.
'무조건 매각론'에서부터 △조건부 매각론 △조건부 독자생존론 △무조건 독자생존론 등 스펙트럼도 컸다.
지난 2월14일 마이크론과 5차 협상을 마치고 귀국한 박종섭 하이닉스 사장은 "주요 쟁점에 대해 합의했다"며 "마이크론이 제시한 MOU 초안(Term Sheet)을 채권단에 넘겼으며 채권단으로부터 승인 여부를 받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비슷한 시각.
어찌된 일인지 투신사는 물론 주요 채권은행인 한빛.조흥은행 관계자들조차 MOU 초안을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외환은행에 물어보라"며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렸다.
이런 저런 불만은 결국 김경림 외환은행장의 '경질'로 이어졌으나 그후로도 변한 것은 없었다.
3월10일 6차협상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이덕훈 한빛은행장과 만프레드 드로스트·이연수 외환은행 부행장, 박종섭 하이닉스 사장 등은 내부 의견 조율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할 정도로 의견 충돌이 심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국내 협상단이 아마추어였던 것은 결코 아니다.
지난 1월7일 서울에서 열린 3차협상과 1월22일 미국에서 열린 4차협상은 한국측이 주도했다.
마이크론이 제시했던 20억달러의 인수가격을 한국측은 '벼랑 끝 전술'로 40억달러로 끌어올렸다.
당시 협상 실무자는 "하이닉스 재정자문사를 맡았던 SSB가 하이닉스의 매각가격을 31억∼46억달러로 산정했던 걸 감안하면 40억달러는 괜찮은 결과"라며 "그러나 40억달러로 합의하는 과정에서 마이크론을 설득하는 것보다 채권단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작업이 더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어떻게하든 하이닉스를 헐값에 인수하려했던 마이크론과 이를 알게 모르게 지원했던 미국 정부와 언론들.
채권단 내부에서조차 의견차를 좁히지 못한 채 정부에 떠밀리다시피 협상테이블에 앉아야 했던 한국측 협상단.
하이닉스 매각협상은 처음부터 '지는 게임'이었다.
하영춘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