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권기자의 벤처열전] 가출소년이 가전업체 사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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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전 서울의 남산.
통행금지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울리자 남산의 벤치 밑으로 들어가 신문을 덮고 자는 소년이 한 명 있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그는 가난이 지긋지긋 하다며 이날 5천원을 들고 집을 뛰쳐나왔다.
남산을 베개삼아 누워 밤하늘의 별을 세며 잠들었다.
언젠가는 따뜻한 아랫목에서 편안하게 잠잘거라는 다짐을 하며….
남산의 그 소년이 올해 매출목표가 5백억원인 김치냉장고 전문회사 해피라인의 김일상 대표(48)다.
남산 근처에서 방황하던 그는 대구의 농협하치장에서 허드렛일을 하게 된다.
억척같이 일하며 돈을 모아 25세때인 1980년 유통회사 해피프라자를 세운다.
1990년대초 유산소운동기 안마기 등 소형 가전제품 생산에 뛰어든다.
그러던 어느날 김 사장은 문득 신선도를 오랫동안 유지시키는 냉장고를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무작정 실험에 나섰다.
수많은 실패 끝에 대기업과 같은 시기에 김치냉장고 개발에 성공한다.
하지만 판로가 문제였다.
동양매직 캐리어 한일 등 큰 기업의 문을 두드렸다.
끈질긴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인가.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이지만 주문이 들어왔다.
그런데 얼마 안가 문제가 터졌다.
일부 제품의 공조 컨트롤러에 이상이 생겨 반품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
그는 밤을 새워가며 문제점을 찾았다.
반품으로 부도 위기에 몰렸지만 전 재산을 털어 새 제품으로 교환해 줬다.
회사가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자 70여명의 직원들은 다 떠나버렸다.
김 사장은 이를 악물었다.
다시 일어선 그는 창고에 쌓인 반품물량 4천대보다 더 많은 신뢰를 얻게 된다.
지난해부터는 자체 브랜드 판매에 들어갔다.
홈쇼핑 채널인 농수산TV 등을 통하자 자체 브랜드 판매 비중이 90%로 껑충 뛰었다.
올해 국내 판매목표는 15만대.
브랜드 파워는 뒤지지만 품질은 대기업보다 훨씬 낫다는 게 그의 자랑이다.
김 사장은 남산 시절을 생각하면 따뜻한 집에서 산다는 게 그저 행복하단다.
어려울 때 담보로 제공돼 아직 담보해제가 안된 집이지만….
m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