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협상전선] (30.끝) 꼬여가는 하이닉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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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26일 서울 여의도 맨하탄호텔.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이 투신 증권 리스사 등 하이닉스반도체의 제2금융권 채권단 대표를 극비리에 만나고 있었다.
이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사흘 뒤 열릴 하이닉스 매각 MOU(양해각서) 승인을 위한 채권단회의에서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
정부가 외환위기 이후 숱하게 부실기업을 처리해 왔지만 금감위원장이 직접 나서 채권단을 설득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만큼 정부의 입장이 다급해졌다는 반증일 수 있다.
하이닉스 매각을 놓고 정부는 왜 이처럼 집요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나섰을까.
이에 대한 정부쪽 설명은 "이왕 맺은 MOU를 통과시킴으로써 하이닉스라는 경제의 불안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국익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교과서적인 설명'만으로는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동원된 무리수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지난 3월10일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김경림 외환은행장을 전격 경질한 것이나, 4월18일 이덕훈 우리은행장에게 MOU 체결의 전권을 넘긴 것 등이 '무리수'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와 관련해서 금융계에서는 지방선거 등을 겨냥한 '정치적 판단론'과 '루빈 씨티은행 회장과의 밀약설'이 그럴듯하게 떠돈다.
로버트 루빈 회장은 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재무장관으로 꼽히는 사람이다.
그는 작년 10월22일 한국을 방문했다.
이때 하이닉스처리와 한국의 차세대전투기 선정때 미국기업을 우선 고려해주면 국가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하겠다는 '빅딜'이 이뤄졌다는 것이 밀약설의 골자다.
물론 정부는 이 밀약설에 대해 펄쩍 뛴다.
호사가들의 입방아일 뿐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그러나 루빈이 다녀간 뒤에 전개된 일련의 흐름이 밀약설을 그럴듯하게 뒷받침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당장 작년 12월3일 마이크론과 하이닉스는 합병을 포함한 전략적 협력방안을 공동 발표했다.
지난 3월27일에는 한국 공군의 차세대전투기(FX)로 미국 보잉의 F15K가 사실상 선정됐다.
바로 다음날인 3월28일엔 미국의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사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두 단계나 올렸다.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매각 외에 남는 또 다른 의문은 박종섭 전 하이닉스 사장의 태도다.
박 사장은 이덕훈 우리은행장과 함께 매각 MOU에 서명을 한 당사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사장은 협상 결과에 강한 불만을 토로하면서 '4월30일 이사회의 반란'을 사실상 주도하다시피 했다.
이율배반적인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선 해석이 엇갈린다.
가장 유력한 해석은 박 사장의 '양심선언론'이다.
정부가 개입하면서 사실상 '백기협상'을 한데 대해 박 사장이 이사회를 통해 불만을 나타냈다는 해석이다.
채권단의 한 고위 관계자는 "4월19일 MOU를 체결할 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며 "박 사장이 마지못해 MOU에 서명했지만 하이닉스 이사회의 승인을 거치자는 부대조건을 달았다"고 밝혔다.
이때부터 박 사장은 MOU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을 굳혔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정부 및 채권단 일부의 시각은 다르다.
박 사장이 결정적인 순간에 배반을 했다며 '음모론'을 거론한다.
한 관계자는 "박 사장이 MOU에 서명해놓고도 등을 돌린 것은 알게 모르게 현대그룹 인사들의 의중이 작용한 결과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어쨌든 마이크론과의 하이닉스 매각 협상은 일단 실패로 끝났다.
다시 재정주간사가 선정돼 사업분할안을 짜고 있는 만큼 하이닉스 처리는 이제 또 다른 출발점에 서 있다.
회사와 주주, 국가경제에 모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하이닉스를 처리하기 위해선 마이크론과의 협상과정에서 나타난 오류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하영춘.김성택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