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코너] 노사발전 키워드 '양보'

"근로자 1백명인 사업장과 7천명이 넘는 사업장 노사가 한자리에 앉아 공동교섭을 벌인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창원 S기업 노무담당 임원) "협상에 임하지 않다가는 곧바로 파업을 당하는 데 별다른 도리가 없죠"(대구 B기업 관계자) 올해 산별교섭을 처음 치른 회사측 관계자들이 털어놓은 푸념이다. 그동안 기업별로 노사협상을 벌였던 사용자들은 집단교섭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이중교섭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산별교섭을 끝낸 이후에도 기업별로 임금,근로조건개선 등을 다시 협의해야 한다. 산별교섭이란 산별노조 소속의 여러 사업장 노사가 한자리에 모여 집단으로 협상을 벌이는 것이다. 기업여건이나 형태,규모가 천태만상이지만 산별교섭이란 이름아래 한 테이블에 앉아 머리를 맞댄다. 산별노조로 등록된 사업장이라면 집단교섭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이를 어겼다가는 노조로부터 파업이란 '응징'을 당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기업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협상에 응하고 있다. 올해 전국금속노조 보건의료노조 전국택시노조 등 민주노총산하 3개 산별노조사업장에서 벌인 파업은 1백90여건으로 전체분규건수(2백48건)의 70%를 넘고 있다. 분규를 주도한 이들 '3인방'중에서도 금속노조는 완성차,자동차부품,조선,중공업,반도체부품 등 성격이 서로 다른 1백20개 사업장이 뭉친 거대 공룡조직이다. 덩치가 큰 만큼 파워도 막강해 교섭에 불응하는 사업장에 대해선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두산중공업은 지난 5월 집단교섭을 거부하다 파업을 겪은 대표적 케이스다. 임금과 단체협상 내용은 들춰보지도 못하고 산별교섭문제로 40일 이상의 분규를 경험했다. 회사측은 성격이 다른 기업들과 함께 교섭을 벌일 수 없다고 버티다 노조의 파업에 휘말렸다. 지금도 여러사업장들이 기본협약체결을 둘러싸고 고초를 겪고 있다. 산별노조는 지난 98년 노동법개정 때 근로자의 단결권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됐다. 독일 등 유럽에서는 일반화된 형태지만 툭하면 대립과 반목을 일삼는 우리나라의 풍토에서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지적이다. 물은 이미 엎질러졌다. 이제와서 주워 담을 수도 없다. 노사가 한발짝씩 양보하는 성숙한 의식이 성숙된다면 산별노조도 우리나라 노사관계 발전에 득이 될수 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