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公자금조사에 앞서 할일..金仁浩 <시장경제연구원 운영위원장>

여·야간에 오랫동안 논란이 돼 온 공적자금 국회조사특위 활동이 시작됐다. '사상 최악'이라는 태풍 피해 추계치가 5조원대인데 비해,직·간접적으로 국민부담과 관련 있는 자금이 무려 1백56조원이나 투입됐으니,국회가 따져야 할 소재로 이 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 수 없다. 천문학적 규모가 그러하고,끊임없이 제기돼 온 자금운영의 난맥상,비리나 유출 가능성,회수불능 부분에 대한 국민부담 등 모두 국회가 관심과 흥미를 갖기에 충분하다. 이제 특위활동이 시작됐으니 사소한 문제 제기나 비리 적발에 그치지 않고,공적자금 조성 규모의 적절성과 사용의 효율성을 밝히는 본래의 목적에 최소한이라도 부합되는 성과가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필자는 벌써부터 이번 특위활동이 별로 기대할 게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갖고 있다. 문제에 대한 인식과,문제해결을 위한 접근방법이 잘못 됐고,여·야간 동상이몽(同床異夢)의 정치적 동기에 의해 조사활동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천문학적 규모의 공적자금은 IMF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금융과 기업의 구조조정을 뒷받침하고,위기극복 과정에서 드러난 금융과 기업의 부실을 떨어내기 위한 비용으로 지불된 것이다. 따라서 이 비용의 규모가 적절했는지,효율적으로 사용됐는지 여부는,이 비용을 써서 하려고 했던 위기극복 과정이 적절했는지,또 이를 위해 채택한 정책수단과 조치들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떠나서 이루어질 수 없다. 이러한 정책방향이나 정책수단들은 그에 앞서 우리가 맞았던 97년 외환위기의 본질,그리고 사태발생의 배경과 원인이 종합적으로 밝혀지지 않으면 그 적절 여부가 평가될 수 없다. 그러므로 공적자금에 대한 조사는 반드시 있어야 할 이 일련의 분석과정의 하나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 이상의 수순에 따라 본질적이고 선행돼야 할 문제에 대한 조사와 분석이 먼저 이루어지고,그 바탕위에서 이 조사가 진행돼야만 의미 있는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금융적 측면에서 본 97년 위기의 본질은,오랫동안 축적돼 왔으나 그 상당부분이 잠복돼 온 우리 금융시장과 금융산업의 부실이 국제금융사회에 노출되면서 신뢰를 상실해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 금융시장이 시장답게 작동되지 못하고,우리 금융산업이 산업으로서의 독자성과 능률성을 갖지 못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정부의 역할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금융 구조조정의 성공여부는,시장원리가 작동하는 금융시장으로 변모됐는지,그리고 금융산업이 과연 스스로 위험부담의 주체가 돼 금융수요에 대응하고 시장경제를 주도하는 국제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변화됐는지 여부로 판별돼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시장에 대해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하고,해서는 안될 일은 절대로 안하는 정부로 바뀌었는지도 성공여부를 가리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따라서 공적자금 사용의 타당성이나 적절성도 이러한 기준 하에서 분석돼야 한다. 현 정부는 집권 이전 정권 인수준비를 할 때부터 외환위기의 원인을 밝히는 작업을 했지만,그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에 그 이후 위기의 극복과정이 제대로 된 길을 걸을 수 없었다고 본다. 공적자금 조사에 보다 큰 열의를 갖고 있는 야당도 현 정부가 범한 잘못을 답습해서는 안될 것이다. 자금사용 과정의 비리나 의혹을 밝히는 것이 정치적으로는 중요하겠지만,현 정부 집권 기간에 이를 충분히 밝히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여당이 현 정부 집권기간내에 이 조사활동을 끝내고 싶어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자명하다. 차기 정부가 집권하는 동안에도 우리의 금융시장이 시장답게 작동하지 못하고,금융산업이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재편되지 못한다면,그리고 이를 위한 정부의 역할이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 경제의 장래는 비관적이다. 따라서 야당이 집권 의지와 능력이 있다면,지금은 공적자금 조사 그 자체보다,이 자금을 사용해 추진해온 금융 구조조정 노력으로 변화돼 온 우리 금융시장과 금융산업 경쟁력의 현주소 및 금융시장에 대한 정부 역할의 참 모습을 확인하고 이로부터 다음 정부의 금융정책 입안을 위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ihkim@shink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