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투데이] 이름값 못하는 국제기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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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계는 어느 때보다 심각한 금융위기에 노출돼 있다.
아르헨티나에서부터 브라질로 이어지는 중남미 경제위기는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기구들의 위기관리 능력에 문제가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물론 몇가지 측면에서 진일보한 면도 있다.
예를 들어 IMF는 자본시장 자유화에 대한 기존의 입장을 재검토하고 구제금융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빈곤문제에 대해서도 관심 있게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첫째,무역적자국에 초점을 맞춘 현재의 정책시스템은 기본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한 나라에서 무역적자가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그만큼의 적자가 다른 나라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정책이 예상보다 좋은 성과를 거둔 것은 미국이 무역적자를 최종적으로 떠안는 역할을 해 가능했다.
이런 정책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둘째,빈국들은 환율과 이자율의 급변에서 오는 위험에 적절히 대처할 만한 능력이 부족한 문제를 안고 있다.
시장은 이같은 위험을 분산시킬 적절한 메커니즘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이는 IMF와 같은 국제기구들이 담당해야 할 역할이다.
현재 과도한 부채를 지고 있는 국가들은 위험관리에 대한 체계적 조언을 필요로 하고 있다.
셋째,아르헨티나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경제위기에 대한 적절한 처방을 내리지 못했다.
물론 아르헨티나에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가 IMF의 조언을 충실히 따랐다고 하더라도 경제위기를 피할 수 있었을 거라고 보기는 힘들다.
진정 필요한 것은 실물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정책처방이다.
이를 통해 아르헨티나 상품을 위한 시장을 창출하고 아르헨티나 회사들에 신용을 공급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발표된 세계은행 보고서도 멕시코 경제가 회복된데는 IMF의 구제금융보다 미국과의 교역이 더 큰 역할을 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넷째,무역협정이 현재보다 더 공정해질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선진국들은 제3 세계에 대한 시장개방의 폭을 보다 확대해야 한다.
다섯째,무역이 경제안정화의 도구로서 적극 활용돼야 한다.
아르헨티나산 제품이 팔릴 수 있는 수출시장을 마련해 주는 것은 몇십억달러의 금융지원보다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국가파산의 문제와 관련해 IMF가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채권자(IMF)가 일국의 파산과정에서 중심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명백하다.
IMF가 국가의 파산에 대한 재판관이 될 수는 없다.
오늘날 세계화가 안고 있는 문제는 각국의 재무장관이나 중앙은행총재들 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국민들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세계경제의 기본 시스템이 안고 있는 결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이를 해결하는 것은 오늘날 지구 공동체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다.
다음주에 열릴 IMF와 세계은행 연례총회에서 이같은 문제들이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정리=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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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파이낸셜타임스 9월23일자에 실린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의 'The disastrous consequences of a world without balance'를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