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야인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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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경기도 이천의 한 호텔 커피숍에는 검은 색 정장차림을 한 '노신사' 50여명이 모였다.
자유당 시절 주먹세계에서 이름을 떨친 김두한의 후계자 조일환,일명 '오따'로 불린 정종원,'낙화유수' 김태련씨 등의 모습이 보였다.
이날 모임은 5·16 군사쿠데타 후 정치깡패로 지목돼 사형당한 이정재 묘지를 참배하기 위해서였다.
참석자들은 이씨의 사형에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며 앞으로 명예회복문제를 다루겠다는 뜻도 내비쳤다고 한다.
주먹원로들이 이처럼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이례적이라고 하는데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는 '야인시대'와 무관치 않은 듯 하다.
직장인들의 귀가시간을 앞당길 정도로 인기폭발 중인 이 드라마는 시청률이 50%를 넘어서면서 주먹신드롬까지 생겨나고 있다.
무술학원이 붐비고 동대문상가 등지에서는 '야인시대'의 야인들이 입는 코트가 제법 팔리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형님''서방님'이 유행하는가 하면 '쌍칼''구마적'하며 드라마를 흉내내는 일도 빈번하다.
교도소에서는 폭력이 조장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올 지경이 됐다.
드라마의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동시에 폭력을 미화하고 있다는 비판도 거세게 일고 있다.
종로상인들의 돈을 뜯어내고 패싸움을 일삼으며 이권을 챙기는 깡패를 마치 '의인'이나 '독립운동가'로 묘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시대적 배경을 빌미로 청소년들 사이에 그릇된 가치관이 심어질까도 걱정이다.
지난해에는 '친구''조폭마누라' 등 폭력영화가 극장가를 휩쓸면서 소위 '조폭문화'열풍을 몰고 왔다.
이번에는 조폭이 방송전파를 타고 안방을 강타하고 있는 것이다.
폭력장면에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것은 잠재적인 폭력욕구의 대리충족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폭력의 일상화는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야인시대'는 종전의 '모래시계' 시청률을 능가할 것인지가 관심이라고 한다.
그러나 시청률보다는 김두한이라는 인물이 왜 사회의 부조리에 분노하고,야인정신은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부각시켜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