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 태권도 민간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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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척 바빠졌습니다"
미국 태권도계의 대부로 불리는 준 리(71·이준구).
1956년 미국에 이민 와 태권도로 주류사회에 정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는 얼마전 워싱턴포스트가 2개면을 할애,태권도와 자신의 삶을 소개한 후 강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며칠 전 이씨는 미 노동부의 강연 초청을 받았다.
미 행정부가 한국의 전통 무예인 태권도를 주제로 별도의 강연자리를 마련한 것은 드문 일이다.
이날 강연은 첫 아시아계 장관으로 발탁된 일레인 차오 장관(48)이 의욕적으로 시작한 직원 교육프로그램의 하나로 마련됐다.
차오 장관은 직원들이 늘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는 신조아래 워싱턴포스트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이씨를 연사로 초대했다.
한창 일할 시간인 오전 11시에 강연이 시작됐는데도 직원들과 직원가족들까지 포함해 2백명 정도가 참석했다.
강연은 1시간 동안 이어졌다.
문하생 4명의 시범과 이씨 스스로 제작한 음악 등도 소개됐다.
이씨가 71세의 나이에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팔굽혀펴기를 1천번씩 한다고 소개하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됐지만 많은 미국 사람들에겐 여전히 낯선 운동이다.
워싱턴포스트에 태권도가 상세히 소개된 후 이씨를 찾는 기관이 부쩍 늘어난 것만 봐도 태권도에 대한 미국 사람들의 인식이 아직은 기대 이하라고 볼 수 있다.
이씨의 강연과 시범은 그들을 태권도에 눈뜨게 하는 소중한 기회가 됐다.
차오 장관은 이씨를 '한국이 미국에 준 가장 큰 선물'이라고 소개했다.
과학자였던 아인슈타인이나 메이저리그 홈런왕이었던 세미 소사 못지않게 성공한 이민 사례라고 치켜세웠다.
이날 강연 참석자는 2백명이었지만 그 의미는 그 어떤 외교적인 행사보다 컸다.
사실 주미 한국대사관 업무의 70∼80%는 북한을 둘러싼 대미 외교에 치우쳐 있다.
한국 문화를 알리기 위한 문화외교나 교포를 돕기 위한 민생외교는 뒷전으로 밀리게 마련이다.
이씨의 강연은 이들과 대조를 이룬 돋보인 민간외교였다.
워싱턴=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