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투데이] 달라진 러시아 대외관계

[ THE WALL STREET JOURNAL 본사 독점전재 ] 테러와의 전쟁은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를 어느 때보다 가깝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러시아와 유럽의 관계는 오히려 소원해지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체첸군이 알카에다 및 오사마 빈 라덴과 연계돼 있다는 러시아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반면 유럽은 러시아가 체첸군과 정치적인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같은 견해차는 러시아의 외교관계 변화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는 과거 핵무기, 미사일방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확대 등에 대한 논쟁으로 악화되곤 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요즘 주로 유럽연합(EU) 때문에 외부세계와 마찰을 일으키곤 한다. 문제는 러시아가 현실적으로 EU와의 관계를 더 중시할 수밖에 없다는데 있다. EU와의 경제관계가 미국보다 더욱 밀접하기 때문이다. EU와의 교역량이 미국보다 훨씬 많고, 투자유치 규모도 크다. 러시아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할 곳도 미국이 아닌 EU다. 러시아 미래의 번영은 EU와 어떤 관계를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러시아 연방회의(상원) 외교위원회의 미카일 마르게로프 위원장은 "지난 2년간 러시아와 미국은 합의하는 방법을 배웠다"며 "그러나 EU와는 아직 그와 같은 관계에까지 이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와 미국은 안보 현안에 있어 서로를 잘 이해한다. 러시아와 EU가 상호이해하는 것보다 이해의 폭이 크다. 더욱이 러시아와 EU의 관계는 복잡하다. 지리적으로 가까이 위치해 있어 그렇다. EU는 러시아를 안보상의 파트너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안보상의 위협으로 간주한다. 불법 이민, 에이즈와 같은 질병, 돈 세탁, 인신매매 등의 잠재적인 원인 제공자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EU와의 논쟁은 러시아에 더욱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러시아는 NATO의 확대에 즉각적 영향을 받지는 않지만 EU가 오는 2004년부터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등을 포함하는 식으로 확대되면 러시아와 현실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러시아와 EU간의 결정적 시각차는 최근 체첸군에 의한 극장 인질사건이 발생한 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부시 대통령은 당시 인질범을 지난해 9.11 테러를 일으킨 테러리스트들과 비유하면서 "알카에다 요원이 러시아에도 침투해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러시아와 유럽의 긴장관계는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인질사건을 해결한 뒤 코펜하겐에서 열릴 예정이던 체첸 의회 개최를 중지시켜 달라고 덴마크 정부에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러시아는 EU 정상회의에 체첸 문제를 의제로 올리자는 EU의 요구를 거부했다. 게다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체첸 민간인들에게 러시아군이 지뢰를 사용했는지 물은 프랑스 기자를 위협하기까지 했다. 러시아 정치인들은 "많은 EU 국가들이 테러리즘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게 문제"라고 주장한다. 마르게로프 위원장은 "유럽은 정말 운이 좋다. 그들은 도심에서 비행기가 추락하거나 극장에서 인질사건이 벌어지는 걱정을 안해도 된다"고 말했다. 유럽은 테러리즘을 이론적으로만 이해하지만 러시아와 미국은 이를 개인적인 비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게 러시아 정치인들의 생각이다. 정리=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 ----------------------------------------------------------------- ◇ 이 글은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게재한 'EU, Russia Grow Distant As Moscow Sides With US'를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