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상처'를 보여주마 .. '갱스 오브 뉴욕'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갱스 오브 뉴욕"은 19세기 중반 뉴욕에 발생했던 잔혹사를 통해 미국인에 잠재한 폭력의 유산,정복의 뿌리를 들춰낸다. "택시드라이버""뉴욕뉴욕""분노의 주먹" 등에서 현대 뉴욕 하층민의 폭력적이고 부조리한 삶을 탐구했던 스콜세지 감독은 이 영화에서 그 폭력과 부조리의 근원을 찾아 나선다. 첫 장면은 뉴욕의 슬럼가 파이브포인츠에서 벌어진 이민자들과 토착민들간의 처절한 살육전. 여기서 토착민의 우두머리 "빌더부처"(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이민자 리더인 프리스트 발론(리암 니슨)을 죽이고 이 광경을 목격한 발론의 어린 아들 암스테르담(레오나드 디카프리오)이 후일 장성해 복수극을 펼친다. 여기에 이민자와 거주자,그리고 정치세력간의 갈등,남북전쟁 징집을 둘러싼 상류층과 빈민층의 대결,흑인과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 등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첫 장면은 이후 모든 중요한 에피소드들을 끌어내는 원료구실을 한다. "피의 보복"을 다룬 내용처럼 형식면에서도 아버지격인 첫 장면이 아들격인 나중 장면들을 지배하고 간섭하고 있다. 형식과 내용이 교묘하게 포개져 있는 구조다. 파이브포인츠는 사기 도박 살인 매춘 등이 빈번히 일어나는 범죄의 온상이지만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이 매일 수천명씩 모여드는 "낙원"이란 복합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오늘날 뉴욕의 모습도 이런 유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도살자"란 뜻의 이름을 지닌 "빌더부처"는 자신을 "뉴욕"이라고 소개한다. 법치가 아니라 폭력이 군림하던 뉴욕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는 자신을 토착민(네이티브 아메리칸)이라고 말하지만 진짜 토착민들은 아메리칸 인디언들이다. 말하자면 그들의 싸움은 이민자들간의 패권다툼이다. 그런데 20세기 갱들과 달리 갱들의 싸움이 공개적으로 자행되고 있는데서 "정복의 역사"가 읽혀진다. 암스테르담이 아버지의 복수를 광장에서 시도하기 위해 희생을 자초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적을 공개적으로 처단함으로써 그 지역의 통제권을 공식적으로 인수받겠다는 의사다. 이것은 로마제국시대 시저의 정치철학과 동일하다. "가장 난폭한 자를 가장 강력하게,그리고 가장 성공적으로 패퇴시키면 다른 나라들은 자동으로 굴복한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이런 패권의 역사를 비판하고 있다. 주인공들은 모두 "미국의 상처"로 묘사된다. 빌더부처와 암스테르담의 몸은 흉터투성이며 암스테르담의 흉터에 키스하는 소매치기 여인 제니(캐머런 디아즈)의 복부에도 깊은 상처가 있다. 갱들이 싸움하기 직전 같은 신에게 기도하는 장면은 미국인의 종교관에 대한 조소다. 그들은 진정한 기독교 정신을 따르기 보다는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종교를 기만하고 있다. 19세기 중반 뉴욕 슬럼가를 재현한 세트나 의상은 면밀한 고증을 거쳐 완성돼 리얼리티를 높인다. 그러나 갱들간의 심리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에피소드들이 빈약하다. 때문에 목숨을 건 전투들이 찻잔속의 태풍처럼 스크린밖 객석으로 밀도있게 전달되지 않는다. 특히 디카프리오는 바닥인생을 거치면서 어둡고 조숙해진 암스테르담이란 캐릭터를 구현하는데 역부족이다. "캐치 미 이프유 캔"의 주인공처럼 철부지 소년에나 어울릴 듯 싶다. 28일개봉,18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