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불안' 은 경제를 잠식한다 .. 임혁 <금융팀장>

1970년대에 만들어진 독일 영화에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었다. 뉴저먼 시네마 운동의 기수였던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의 대표작이다. 이 제목에서 '영혼'을 '경제'로 치환해보면 요즘 국내 경제상황을 잘 설명해 주는 명제가 될 듯하다. 경기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는데 그 가장 큰 요인이 가계 기업 등 민간 경제주체들의 불안감에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소비자평가지수 기업실사지수 등 경제지표들을 읽어보면 이런 생각이 더욱 굳어진다. 가계와 기업의 심리를 나타내는 이들 지수는 한결같이 100을 한참 밑돌고 있다. 경제주체들이 경제의 앞날을 그만큼 어둡게 보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불안감이 그저 '심리적 현상'에 그치는 게 아니라 소비 투자 등 경제활동의 위축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다시 불안감을 증폭시켜 경제가 헤어나기 힘든 악순환에 빠질 수도 있다. 이를 두고 근자에 만난 한 경제학 교수는 "경제운용에서는 펀더멘털(fundamental·경제기초여건)보다 멘탈(mental·심리)이 중요하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경제주체들의 불안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불확실성'이다. 국내외 상황을 돌아보면 요즘처럼 불확실성이 팽배했던 적도 드문 것 같다. 크게는 이라크 사태,북핵 사태에서부터 작게는 두산중공업 노사분규 사태에 이르기까지 결말을 점치기 어려운 요인들이 산적해 있다. 그중에도 민간 경제주체들이 특히 아쉬워하는 것은 '정부정책의 불확실성'인 듯 싶다. 정책의 불확실성이라고 하는 것은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해소될 수 있는 문제인데도 그렇게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법인세 인하 문제만 해도 그렇다. 법인세를 얼마나 부담하느냐 하는 문제는 재무의사결정에서 중요한 고려 요인이다. 법인세율에 따라 차입금의 레버리지(leverage) 효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즉 투자자금을 조달할 때 증자를 통해 마련하느냐 차입을 통해 충당하느냐의 의사결정이 법인세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도 과천과 청와대에서 서로 다른 소리가 나오니 기업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다. 가계대출 문제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전에 "가계대출의 급격한 축소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해 가계대출 억제를 완화하겠다는 뜻을 비췄다. 하지만 최근 열린 경제장관간담회에서는 여전히 가계대출을 억제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최근에 벌어진 불확실성의 백미는 삼성그룹의 출자총액제한 제외문제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부채비율 1백% 미만'을 달성한 기업집단은 출자총액제한 대상에서 빠지게 돼 있다. 그런데 막상 삼성이 이 기준을 달성할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이 오니까 공정위에서는 '제외시켜야 할지 고민 중'이라는 얘기가 들려온다. 그럴거면 애초에 제외규정은 왜 만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런 불확실성 투성이의 정책보다도 더 기업들을 복장 터지게 하는 요인은 따로 있다.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하면서도 스스로는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정부의 태도다. 더 나아가 "도대체 뭐가 불안하다는 거냐"고 되묻는 노 대통령 앞에서는 할 말이 없어진다. 그래도 한마디 한다면 "자신이 '절망적 존재'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무지가 가장 큰 절망"이라고 한 키에르케고르의 말을 이렇게 바꿔 들려주고 싶다. '자신이 불안한 요인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존재야 말로 가장 큰 불안요인'이라고 말이다. limhyu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