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깃한 육질.고소한 먹물 "한잔 생각나네!" .. '오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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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의 옛 이름인 오적어(烏賊魚)는 재미있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까마귀(烏)를 훔치는(賊) 물고기(漁).동의보감을 비롯한 자산어보,규합총서 등의 서적에 등장하는 오적어는 영악하기 그지없는 생물이다.
"물위를 부유하다 까마귀를 보면 죽은 척 위장을 하고 다가오면 낚아채 바다 속으로 끌고 들어가 잡아먹는다"는 글이 있는가하면 오징어 먹물로 쓴 글씨는 해가 바뀌면 종이 위에서 사라지는 요술을 부린다는 기록도 있다.
오랜 시간 우리의 곁에서 좋은 먹거리였던 오징어가 이제는 금값이다.
성수기를 지난 탓도 있겠지만 어획량 자체가 급감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동해의 어부들은 오징어 만선의 추억을 잊지 못한다.
물 반 오징어 반이었던 시절의 화려한 생활을 기억하며 허탈한 웃음을 짓는 걸로 만족한다.
칠흙같이 어두운 바다의 수평선을 야화(夜花)처럼 수놓는 오징어배의 집어등은 도심의 네온사인 보다 훨씬 화려하다.
밤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만큼이나 영롱한 불빛이 바다에 반사되어 배를 따라 길게 늘어선다.
얼레를 닮은 낚시틀을 돌리면 오징어들이 줄줄이 꿰어져 따라 올라온다.
광택있는 오징어의 피부는 집어등 불빛을 반사하며 반짝거린다.
마지막 순간까지 먹물을 내뿜으며 발버둥을 치지만 허사다.
은성 오징어 보쌈(대학로 라이브1관 앞,02-744-5034)=유행에 따라 부침이 심하기로는 강남 청담동에 버금가는 동네가 바로 대학로다.
예술 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자기만의 취향이나 스타일이 고집스럽고 먹거리 선택에 있어서도 까탈스럽다.
어설픈 새로움보다는 탄탄한 기본기에 후한 점수를 준다.
십여 년이 지나도록 연극 팬들과 콘서트 매니아들에게 지속적인 인기를 유지하는 은성의 비결은 저렴한 가격과 넉넉한 인심에 있다.
대표적인 메뉴로는 오징어 보쌈,섞어찌개,오징어 만두를 꼽을 수 있다.
무교동 낙지 볶음에 비교될 만큼 매운맛이 특징인 오징어 보쌈은 통째로 양념한 오징어와 무 무침,데친 콩나물,상추로 구성되어 있다.
혀가 아릴 정도로 매운 양념의 오징어는 아삭거리는 콩나물과 궁합이 좋다.
몇 점 집어먹다보면 속에서 열이 난다.
흘러내리는 땀은 둘째 치더라도 불이 난 혀에 연신 손 부채질을 하게 된다.
이렇게 매운 맛을 중화시키는 데는 오징어 섞어찌개가 안성맞춤이다.
오징어,조개,배추,콩나물로 끓여 내오는 찌개는 시원하고 개운해서 보쌈과 좋은 파트너가 된다.
여기에 오징어 만두까지 곁들인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부흥수산(남대문 시장 건너편 북창동 입구,02-776-2560)=북창동에는 재미있는 음식점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집이 오징어만을 전문으로 내는 부흥수산이다.
이 집의 대표적 인기 메뉴는 산 오징어 찜,산 오징어 물회 두 가지.커다란 대접이 넘치도록 내오는 물 회는 상추,오이,깻잎,양파,고추 등의 야채 위에 채 썬 산 오징어를 올리고 양념장과 물을 풀어 벌건 국물을 만든 후 얼음을 띄워준다.
어느 것 하나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는 새콤,달콤,매콤함의 균형이 수준급이고 산 오징어의 쫄깃쫄깃한 탄력이 어금니를 바쁘게 만든다.
적당히 입안을 자극해오는 칼칼한 국물은 게눈 감추듯 소주 한 병을 비우게 만든다.
얼얼해진 혀에는 찜이 최고다.
산 오징어를 통째로 찜통에 넣고 수증기로 충분히 쪄내는데 수증기를 머금은 속살이 촉촉하다.
이는 속초 현지의 조리방식을 그대로 따른 것인데 선도가 보장이 안되면 내장까지 먹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오징어의 내장과 먹물은 별미 중의 별미다.
내장의 맛은 흡사 꽃게의 그것과 비슷하다.
크리미한 내장과 고소하게 퍼지는 먹물의 향미는 기분을 들뜨게 만들어 속초항의 어느 선술집에 앉아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해남갈비(용산구 한남동 서울은행 뒤,02-795-8428)="오삼불고기"라면 용평스키장 근처의 납작 식당을 최고로 친다.
20여년전 만해도 오삼불고기라는 메뉴보다는 오징어 불고기가 훨씬 유명했었고 연탄불에 석쇠로 내주는 집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맛을 못 잊은 식도락가들은 오징어 불고기를 찾기 시작했고 결국 해남갈비에서 그 갈증을 풀어왔다.
양념의 스타일은 비슷하지만 구워 먹는 방식이 사뭇 다르다.
커다란 철판 위에 호일을 깔고 고추장 양념한 오징어를 두르고서 윤기 나는 파 무침과 콩나물을 수북히 넣고 함께 볶는다.
자칫 심심해지기 쉬운 오징어의 맛을 파,콩나물 볶음이 진하게 보조해준다.
감아 올리듯 한 젓가락 맛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다지 진하지 않은 양념인데도 "오징어 주물럭"만의 특유한 단맛이 입 속을 맴돈다.
숨이 죽은 콩나물과 파 무침은 간드러지듯 녹고 구우면서 배가되는 육질의 탄력은 씹는 재미를 안겨준다.
좀 더 특색 있는 맛을 원한다면 "오삼주물럭"이 좋다.
같은 양념이지만 삼겹살이 들어가 훨씬 기름진 맛을 제공한다.
추가 주문을 하고 싶어도 꾹 참아야 한다.
볶음밥을 먹을 배는 남겨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남은 양념에 밥을 넣고 김치,콩나물,파 무침을 잘게 썰어 비비듯 볶아주는 그 맛이 일품이다.
80년대 대폿집 분위기에 걸맞지 않는 아주머니들의 친절한 서비스가 인상적이다.
김유진.MBC PD.맛 칼럼니스트showboo@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