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 CEO들 '전쟁' 말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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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DC에서 이라크에 대한 '48시간 최후통첩'을 발표하던 날 저녁.뉴욕 카네기홀에서는 성대한 파티가 열렸다.
유명 사회자 월터 크롱카이트의 소개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조지 파타키 뉴욕주지사,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 등이 입장할 때 천재 첼로리스트 요요마가 음악을 연주했다.
뉴욕의 잘 나가는 CEO들이 줄지어 모습을 드러낸 이 파티는 샌포드 웨일 씨티그룹 회장의 70세 생일잔치.평소 기부금을 많이 낸 웨일 회장을 위해 카네기홀에서 마련해 준 이날 모임에서는 참석자들이 카네기홀의 음악교육을 위해 2천8백만달러의 기금을 모아 관심을 끌었다.
언론들은 비록 사적인 생일모임이지만 '최후통첩'이 이뤄진 날인 만큼 세계 최대 금융회사의 CEO가 '전쟁'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듣고 싶어했다.
하지만 웨일 회장은 물론 이 자리에 참석한 어떤 CEO도 '전쟁'이란 말은 입에 담지 않아 언론들을 실망시켰다.
세계 최대 기업인 GE의 제프리 이멜트 회장은 최근 프랑스의 라 트리뷴지와의 인터뷰에서 '전쟁이 GE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답은 간단했다.
"나는 기업인이지 정치인이 아니다.미국인으로서 대통령의 정책을 따를 뿐이다"는 것.그가 덧붙인 얘기는 "지정학적인 갈등은 테러에 대한 공포처럼 경기에 부정적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고작이었다.
기업 분석가들은 '말조심'이 요즘 CEO들과 선배 CEO들을 구분 짓는 커다란 차이점이라고 얘기한다.
과거의 CEO들은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얘기했다.
정부의 입장과 같고 다름은 중요하지 않았다.
포드자동차의 창업주인 헨리 포드는 1차대전 참전을 강력히 말렸고,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스페인과의 전쟁 이후 논의됐던 필리핀 합병을 정면으로 반대했다.
CEO들이 말을 아끼는 이유는 소신부족이 아니다.
기업경영이 그만큼 국제화된 탓이다.
제품의 기획 생산 판매가 세계 각국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국의 정치논리만을 따르기는 어렵다.
국제화가 진전될수록 정치논리로 기업을 이해하기는 점점 힘들어지는 것 같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