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이라크공격 진짜 이유..文輝昌 <서울대 교수·국제경영학>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에 관한 지침서로는 손자병법이 가장 유명하다. 2천5백년 전에 쓰여진 것이지만 오늘날에도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미국의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에서는 손자병법을 군사전략 교재로 사용하고 있고,필자도 경영전략 강의교재로 사용하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 이유를 손자병법에 의해 분석해 보면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손자병법의 가장 중요한 지침은 '가능한 한 전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적을 제압하는 데 있어 상책이 전략,중책은 외교,그리고 하책이 무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를 우호국으로 만드는 전략에 실패했고,유엔을 통한 외교에서도 실패한 후 이라크에 대한 무력공격을 감행했으니 손자병법에 의하면 하책임이 분명하다. 손자병법에서는 또 전쟁을 하기 전에 손익계산을 꼼꼼히 한 뒤 확실한 이익이 있을 때만 전쟁을 일으키라고 했다. 단지 화가 나서 전쟁을 하면 안된다고 했다. 후세인에 대한 부시 대통령 부자의 적개심에서 이라크 전쟁이 시작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라면 부시 대통령은 병법의 기초도 모르는 셈이 된다. 내년에 대통령 재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 부시 대통령이 이렇게 미련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전쟁으로 미국이 얻을 확실한 이익은 무엇인가. 이라크 석유자원의 확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이것도 설득력이 없다. 우선 미국이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하더라도 이라크의 석유에 관한 권한을 막무가내로 점유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일정 수준 확보해서 석유생산을 늘린다면 세계적으로 석유가격이 떨어질 것인데,이럴 경우 미국의 석유산업 관련자들은 희비가 엇갈릴 것이다. 우선 소비자는 환영하겠지만 석유생산자는 이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현재 미국에서는 하루에 약 2천만배럴의 석유가 소비되고 있다. 이 중에서 약 1천1백만배럴은 수입되고 나머지 9백만배럴은 국내생산으로 충당하고 있다. 수입과 국내생산이 대략 반씩 된다는 얘기인데,수입가격의 등락에 따라 수입업자와 생산업자의 이해가 엇갈리게 될 수 있다. 이렇게 불확실한 상황에서 미국이 석유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단 말인가. 수천억달러의 비용을 들여 수많은 사상자를 낼 지도 모르는 데 수십만명을 전쟁터로 보낸단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내년 대선에서 부시가 실패할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 미국이 전쟁을 일으킨 근본이유는 무엇인가.그것은 바로 '불확실성의 회피(uncertainty avoidance)'로 설명할 수 있다. 불확실성의 회피는 경영학에서 국가간의 문화를 비교 분석하는 데 사용되는 중요한 변수이다. 미국은 불확실성을 싫어해서 이것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한 나라이다. 특히 인간행위의 불확실성을 싫어해서 이를 회피하기 위해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 두 원칙은 인간 행위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미국은 사담 후세인을 못믿는 것이다. 그가 대량 살상무기를 보유할 때 초래될 수 있는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을 회피하자는 것이다. 과거에 미국은 적대적인 정권을 외곽에서만 봉쇄했다. 하지만 9·11 테러 이후에는 더욱 적극적으로 불확실성을 회피하려는 것이다. 9·11 테러는 미국에는 상상할 수 없는 충격이었으며,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 하고 있다. 한번 소를 잃으면 외양간을 철저히 고치는 것이다. 우리처럼 지하철 대형사고를 겪고 얼마간 부산하다가 또 다른 사고를 겪는 상황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물론 미국이 무조건 옳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미국을 반대하더라도 상황에 대한 폭넓고 깊은 이해가 우선한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 이유는 부시 대통령이 화가 나서,또는 제국주의적 관점에서 석유자원 확보를 위해서가 아니라,테러와 미국안보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함이다. 테러의 위협을 심각하게 느끼지 않고 미국의 정책이 지나치다고 생각이 되면 미국정책에 반대를 하고,그렇지 않다면 동참을 해야 할 것이다. cmoo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