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구 파리특파원의 '명품 이야기'] 화장품 제국의 두 女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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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산업은 다른 분야와 달리 여성 기업인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헬레나 루빈스타인과 엘리자베스 아덴이다.
화장품이 여성 소비품이니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여성의 사회 참여가 전무했던 19세기 말 여성의 힘으로 글로벌 경영을 했다는 것은 산업역사가나 여성학자들이 볼 때도 보통 일이 아니다.
최근 화장품 제국의 두 여황제의 일생과 경영철학을 다룬 책이 발간됐다.
린디 후드가 쓴 '미스 엘리자베스 아덴과 마담 헬레나 루빈스타인'(비라고 출판)이다.
루빈스타인과 아덴은 7살 차이의 동시대인으로 화장품업계 신화를 창조한 주인공들이지만 생전에 만난 적이 없다.
화장품 제국 건설 야망이 서로를 적대적 경쟁자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1871년 폴란드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헬레나 루빈스타인은 18세 나이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 영양크림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1878년 캐나다에서 출생한 엘리자베스 아덴 역시 빈곤한 가정 출신이다.
두 사람은 태어난 가정환경뿐 아니라 마케팅과 홍보를 중시한 경영전략,심지어 화려한 명성과 엄청난 재력 뒤에 감춰진 불행했던 개인생활 등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미국 진출은 1907년 뉴욕에 뷰티 케어 센터를 연 아덴이 5년 빠르지만 루빈스타인은 이미 1902년 런던과 파리를 기점으로 유럽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2차 세계대전 중 루빈스타인은 클렌저와 선크림,군사 작전용 위장(카무풀라주)화장품 세트를 미군에 공급했고 아덴은 여군을 위해 제복에 어울리는 화장품을 생산했다.
그들의 뷰티 이론은 오늘날까지 미용계의 바이블처럼 통한다.
그러나 이들이 화장품 산업 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메이크업의 대중화다.
2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고급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여성들 중에 화장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루빈스타인과 아덴은 여성들로 하여금 색조화장이 남성을 상대로 일하는 특정 직업군의 전유물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게 했다.
1932년 아덴의 붉은색 립스틱 출시는 당시엔 혁명에 가까운 충격이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비슷한 점이 많은 두 사람이었지만 취미는 달랐다.
경마에 관심이 많았던 아덴은 명마를 구입하는 데 많은 돈을 썼고 경주마 사육훈련소를 운영했다.
반면 미술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던 루빈스타인은 아방 가르드 미술품 수집과 청년 예술가 지원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또 평소 "여성들로부터 돈을 벌었으니 그들을 위해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으며 여성 과학자를 육성하기 위해 장학재단도 설립했다.
루빈스타인과 아덴은 자수성가로 부와 명성를 거머쥐었으나 사랑 운은 없었다.
에덴은 평생을 독신으로 보냈다.
루빈스타인은 결혼생활이 순탄치 못했다.
장남은 자동차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났고 차남과는 사이가 틀어져 거의 만나지도 않고 살았다.
두 사람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도 닮은 점이 많았다.
1965년 루빈스타인이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 아덴도 눈을 감았다.
루빈스타인과 아덴은 둘다 혼자서 외롭게 마지막 숨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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