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침체경기 어떻게 푸나'] "추경, 정보화투자ㆍ실업대책에 초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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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핵 사태에 이어 사스(SARS.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 파문이 겹치면서 가뜩이나 소비 불황에 허덕여온 국내 경제가 더한층 깊은 시름에 빠졌다.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을 비롯한 홍콩 대만 등 중화경제권이 사스의 최대 피해지역이어서 적지 않은 수출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북한핵 사태의 장기화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도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나라 안에서는 노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지면서 경제에 한층 짙은 불안감을 드리우고 있다.
국내 경제가 이처럼 이중삼중의 악재에 포위되자 정부가 그동안 주저해 왔던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금리 인하 등의 긴급 경기부양책을 총동원키로 하고 사전 정지작업에 부산해졌다.
김영주 재정경제부 차관보와 전광우 우리금융지주 부회장,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조영승 삼성문화인쇄 사장 등 각계 전문가 4명의 긴급 좌담을 통해 최근의 경기상황을 진단하고 해법을 찾아봤다.
김영주
전광우
정문건
조영승
사회 = 이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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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부진이 연초 예상했던 것보다 심각합니다.
그동안 경기상황을 놓고 시각차를 드러냈던 정부와 한국은행이 이구동성으로 경기부양의 필요성을 제기할 정도로 사태가 나빠지고 있습니다.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 전광우 우리금융지주 부회장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우선 대외 요인으로 미국을 포함한 주요 선진국의 경기 회복이 지연됨으로써 수출 수요가 감소하고 이들의 해외 투자가 위축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두번째는 대내적으로 새 정부의 주요 경제 정책이 카드 연체, 가계 부실 등 시장의 취약한 부분과 충돌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북핵 문제 등으로 인한 투자자들의 불안심리가 확산되면서 시중 자금이 이렇다 할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신용 한계상황에 빠진 소비자들이 경제적 압박을 받으면서 내수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는게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반도체 자동차 휴대폰 등 일부 품목의 수출 증가세가 우리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지만 내수 위축이 성장 동력을 끌어내리고 있습니다.
△ 김영주 재정경제부 차관보 =소비와 투자가 워낙 위축돼 있어 경기 회복의 모멘텀을 찾기 힘들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SK글로벌 사태에다 카드채 부실문제까지 겹쳐 금융시장이 제 기능을 못하면서 경기불안을 더한층 부채질하고 있지요.
북핵 사태와 사스 파문 등 외부악재와도 씨름해야 하니 정말 어려운 상황입니다.
- 경기가 더이상 추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추경 편성을 통한 재정사업 확대가 시급하다는데는 대체적으로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져 있는 것 같습니다.
재정을 동원한 경기부양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어느 부문에 추경이 우선적으로 투입돼야 한다고 봅니까.
△ 정 전무 =IT(정보기술) 산업은 경제 전반에 미치는 전후방 효과가 큰만큼 이 분야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 시급합니다.
올들어 PC(개인용 컴퓨터) 수요가 8% 하락하는 등 IT경기가 바닥을 헤매고 있는데,정부가 앞장서서 이 산업을 키워줘야 합니다.
요즘 쓰이고 있는 컴퓨터들은 대부분 90년대 말 'Y2K 파동'때 개발된 기종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므로 교체시기가 됐습니다.
정부가 최근 '전자 행정' 구현을 적극 추진하면서 관련 IT기자재 도입을 늘리고 있는 것은 이 점에서 기대효과가 큽니다.
정부가 IT 정보화 투자를 늘린다면 시장에 주는 메시지 효과도 있을 것으로 봅니다.
△ 전 부회장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청소년층의 실업 대책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금융시장의 골칫거리인 연체율 증가와 실업률 사이에는 상관 관계가 밀접합니다.
악성 연체자중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20∼30대 초반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늘려줘 안정적인 경제활동이 가능해지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기업의 신규 인력 채용에 대한 보조금을 늘려준다든지, 고용창출 효과가 큰 SOC(사회간접자본) 투자에 예산 집행을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 조영승 삼성문화인쇄 사장 =눈높이가 높아진 청년 실업자들을 중소기업으로 유인하기 위한 정책이 긴요합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지못해 아우성을 치고 있지만, 적지않은 중소기업들은 인력난에 빠져 있습니다.
이런 모순된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중소기업 작업환경 개선금 지원이나 직업훈련 자금 지원을 늘리는 등의 대책을 서둘러야 합니다.
△ 김 차관보 =내수 경기에 민감한 영향을 받는 자영업자나 소상공인들의 실제 생활 여건은 경제지표로 나타나는 것보다 더 심각한 상황입니다.
이들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비중도 높아지고 있고요.
이들에 대한 생활안정 대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청년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직업훈련, 동북아 물류 중심국가 건설을 위한 SOC 투자도 중요합니다.
- 경기 부양책으로 추경예산 편성과 함께 금리 인하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 과열 등 부정적 측면을 들어 금리인하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견해도 적지 않습니다.
△ 전 부회장 =금리 인하는 기업의 투자 심리를 진작시키고 정부의 경기 활성화 의지를 보여줄 수 있어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이라크 전쟁의 조기 종결과 함께 유가가 안정세에 들어섰고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외환시장이 안정세를 찾고 있는 만큼 금리 인하의 부작용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 김 차관보 =상당수 연구기관들이 올해 우리나라의 성장률을 3%대 후반∼4%대 초반으로 점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물가 인상 압력이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무역수지도 유가가 안정되면서 1.4분기 내내 적자에 머물다가 4월엔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금리 인하를 위한 제반 여건은 그다지 나쁘지 않습니다.
부동산 시장 과열 문제는 부동산 보유 과세 강화 등 행정력을 총동원해 관리해 나가겠습니다.
- 사스로 인한 경제 파장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 전 부회장 =장기화 여부가 문제입니다.
중국,대만,홍콩 등 우리의 주요 무역흑자 대상국들이 집중적으로 타격을 받고 있어 국제수지가 적잖게 악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 정 전무 =사스 충격이 장기화될 경우 아시아 경제권 전체가 1997년말 외환위기때 보다 더 큰 경제 위기에 빠질 수 있습니다.
외환위기때는 한국 수출시장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중화경제권이 건재해 우리 경제가 활력을 되찾는데 큰 도움을 받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정반대입니다.
중국의 경제 성장이 둔화되면 연간 5백억달러에 이르는 해외투자 자금중 상당 규모가 빠져 나갈 겁니다.
최악의 시나리오입니다만 이로 인해 중국과 홍콩이 고정환율제를 포기하고, 그 여파로 아시아 각국이 경쟁적으로 환율조정에 나설 경우 걷잡기 힘든 경제적 충격이 닥칠 겁니다.
- 새 정부의 노조 편향적인 노동 정책으로 기업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 전 부회장 =법과 원칙의 존중이 노사 문제를 풀어가는 첫 단추입니다.
합리적인 노사 관계가 정착되지 않고는 현 정부가 추구하는 동북아경제 중심 국가도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 정 전무 =올해 초 일부 외국인 투자자들이 앞다퉈 '셀 코리아'에 나섰던데는 정부의 노사분야 정책에 대한 의구심이 적잖게 작용했다고 봅니다.
현 정부는 '노사간 힘의 균형을 찾아주겠다'고 하지만, 선입견을 갖고 노사문제를 풀려고 해서는 곤란합니다.
△ 조 사장 =노조의 경영참여 요구가 높아지면서 중소기업 사장들의 걱정이 또 하나 늘었습니다.
'참여'만 주장할 뿐 '책임'은 지지않으려는 일부 노조의 행태는 바로잡혀야 합니다.
중소기업들에 심각한 경영환경 악화를 초래할 외국인 고용허가제를 명분론에 치우쳐 서두는 것도 재고해야 합니다.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살고, 노조 활동도 가능한 법입니다.
△ 김 차관보 =정부 노동 정책의 기본 방향은 노사간의 원칙과 신뢰, 대화와 타협을 통해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두산중공업 사태에 정부가 개입했던 것은 노조원의 분신 사망이라는 특수 상황을 서둘러 수습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 큰 경제 손실과 대규모 연대 파업을 사전에 방지해야 한다는게 정부의 판단이었습니다.
지난 5월 노사관계선진화기획단이 출범해 노동 관련 관행과 제도를 국제 기준에 맞게 재조정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 추경과 금리인하 같은 단기 요법이 아닌 우리 경제의 근본적인 체력 향상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 전 부회장 =지배 구조개선을 통한 투명성 제고, 합리적 노사관계 구축 등 시장친화적 개혁이 차질없이 추진돼야 합니다.
또한 은행 구조조정에 이어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한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채권시장 활성화와 건전한 주식투자 문화 확산을 위한 정책에 포커스가 맞춰져야 합니다.
△ 김 차관보 =탄력적이고 신축적인 정책 대응을 통해 외국 투자자들에게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탄탄하다는 신뢰를 심어줘야 합니다.
또한 경제 시스템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구조개혁을 끊임없이 추진해야 합니다.
정리=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