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글로벌스탠더드로 가자] (4) '영국의 노동정책'

"당시엔 노조 탄압으로 비쳐졌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경제에 숨통을 트여준 특효약이었습니다." 영국 최대 민간노조인 제조업ㆍ과학ㆍ금융노조(AMICUS MSF)의 로저 라이언스 위원장은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노조 압박정책을 이처럼 평가했다. 79년 봄 총선에서 노동당을 누르고 집권한 보수당의 대처는 고비용 저효율의 '영국병(British disease) 치료'를 외치며 국영기업 민영화와 노사관계 개혁 등에 착수했다. 그 당시 영국은 76년 통화위기로 인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서 막 벗어난 상황이었다. 특히 오늘날까지 국민들의 머리 속에 '불만의 겨울(winter of discontent)'로 기억되는 79년 1월부터 3개월간 공공노조(NUPE)의 최저임금 인상 요구를 위한 대파업은 전국을 최악의 혼란에 빠뜨렸다. 그때 고등학생이었다는 바클레은행 여직원 수잔(43)은 "병원이 문을 닫는 바람에 독감에 걸린 할머니는 치료도 못받고 청소원 파업으로 거리엔 산적한 쓰레기들이 악취를 풍겼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총선 직전 공공노조의 연대파업으로 전국 신경망이 마비되는 것을 목격한 대처는 노사관계 개혁이 시급하다고 판단, 집권 직후 노조 압박정책을 단행했다. 보수당 정부는 80년 동조시위 금지법을 시작으로 82년 동조파업 불법화, 합법적 쟁의요건 강화 등 일련의 노조 개혁을 추진했다. 파업 찬반 우편투표와 동조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고 노조 가입을 의무화한 클로즈드숍(closed shop)을 금지시켰다. 정부는 무리한 임금 인상과 극단적인 파업을 막기 위해 노동조합 지도부가 조합원들의 불법파업에 책임을 지지 않는 노조법을 개정했다. 보수당의 노사관계 개혁은 13년에 걸쳐 추진됐다. 대처 총리를 이은 존 메이저 정부에서도 개혁은 계속돼 93년 통합 노동조합법 개정으로 노사개혁이 마무리됐다. 대처 정부가 추진한 노사관계 개혁의 주목적은 무엇보다 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통한 국가경제 회생이었다. 마거릿 대처 재단의 한 관계자는 "노동운동을 제한한 대처의 압박정책이 먹힌 것은 경제를 살린다는 큰 원칙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분석했다. 대처 정부가 노조 탄압이란 비난을 받으면서도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79년 공공노조 대파업으로 큰 고통을 겪은 국민들 사이에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또 84년 광산노조 대파업은 국민들에게 이러다간 나라가 망하겠다는 위기감을 심어줬다. 대처의 노조 압박정책으로 70년대 50%를 웃돌던 노조 가입률이 2000년 30%선까지 내려왔다. 노사분규 건수 역시 집계를 시작한 1891년 이후 최저 기록을 지키고 있다. 낮은 노조쟁의에 대해 주영 한국대사관의 정승일 상무관은 "대처 정부의 노조탄압이 노동조합을 약화시킨 것도 있지만 노조도 경제회생에 어느 정도 책임감을 갖기 시작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처 전 총리가 강성노조에 개혁의 첫 메스를 가한 지 23년째 되는 2003년. 오늘의 영국 노동조합은 더 이상 극단적 파괴성향의 이익단체가 아니다. 고용주와는 동반자적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노조의 의사결정 방법도 민주적이며 비노조원에 대해 노조 가입 강요도 없다. 노동시장 유연화로 고용이 늘어나고 실업률이 줄어드는 경제상황 호전을 직접 느끼는 노동조합도 과거의 경직된 노동시장으로의 복귀를 원하지 않는다. 철의 여인 대처 총리, 그리고 그의 정책을 이어받은 같은 보수당의 메이저 총리가 97년까지 강력하게 펼친 노동 및 경제개혁 정책은 90년대 초부터 가시적인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국가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했고 실업률은 감소했다. 근로자들의 실질소득은 꾸준히 증가했다. 90년대 말 기준으로 영국의 경제성장률은 3.4%로 선진국 평균 2.5%보다 높고 실업률은 유럽 대부분의 나라(10% 이상)보다 훨씬 낮은 5%대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통계는 대처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영국경제를 회생시켰음을 방증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97년 총선에서 승리한 토니 블레어 총리는 과거의 노동당과는 완전히 달라졌고 보수당보다도 더 보수적인 경제정책을 펼치고 있다. '대처혁명'의 저자 얼 라이턴은 "대처 전 총리의 급진주의는 시대에 맞게 손질이 가해져 후임 메이저 보수당 총리와 노동당 블레어 정부에까지 이어지며 영국경제를 지탱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노동운동을 제한한 대처의 용기와 일관성이 영국경제를 살리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다. 더 가디언의 질 트리노 기자는 "대처 총리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간에 그의 정책이 영국 산업의 풍경화를 바꾼 것은 틀림없다"고 치켜세웠다. 대처 총리가 90년 11월 갑작스러운 사임 발표로 정계를 떠난지 벌써 12년이 지났지만 영국 곳곳에는 아직도 대처의 그림자가 남아 있다. 런던=강혜구 특파원 bellissim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