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경제비전' 국제회의] "정부 정책 불확실성부터 없애야"

"참여정부는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으로 지난 1백일간 큰 폭풍을 만났고 곧 폭풍을 또 맞게 될 것이다."(김응한 미시간대 교수), "한국이 유럽형 성장정책을 추구한다면 올해 4% 성장도 힘들 것이다."(로버트 배로 하버드대 교수), "외국인 투자자들은 정부의 친(親)노조정책을 우려하고 있다."(피터 스타인 아시아월스트리트저널 홍콩본부 편집국장), "한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정부가 시장개입을 줄여야 한다."(웬디 돕슨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 '투명하고 세계화된 경제'라는 주제로 30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참여정부의 경제비전에 관한 국제회의'에는 국내외 저명 인사들이 대거 참석, 한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갖가지 조언을 쏟아냈다.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시급히 개선해야 할 사항으로 정책의 불투명성을 지적하고, 특히 원칙에 입각한 노동정책을 주문했다. 또 북핵문제와 동아시아 경협기구 창설문제도 한국이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 1주제 ] ◆ 법과 원칙이 요구되는 노동정책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제1토론 '참여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에서 주제 발표를 통해 "일관성 있고 예측 가능한 구조 개혁을 위해 중ㆍ장기적인 목표와 단계적 추진 일정을 담은 '시장개혁 3개년 계획'을 조만간 수립해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김 부총리는 "참여 정부는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기본 노동 정책은 유지하되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노사를 불문하고 법과 원칙을 엄중히 적용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응한 미시간대 교수는 "노조가 기업의 재산권과 비노조원의 권한까지 침해하는 '새로운 권력층'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새 정부는 '결과의 공평'이 아닌 '기회의 평등'이란 관점에서 노동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며 "재벌 개혁에 들이대는 똑같은 정도의 공정성이 노동 부문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터 스타인 아시아월스트리트저널 편집국장도 "노조에 힘없이 굴복하는 것은 외국인 투자를 직접적으로 가로막는 주요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금융 재정 등 거시경제정책에 대한 조언도 다양하게 제기됐다. 스타인 국장은 "가계 부실이 심화되고 신용 불량자 수가 늘어나면서 국내 소비가 급격히 침체되고 기업 생산이 둔화되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며 "은행 등 금융회사의 리스크를 철저히 관리해 신용불량자 문제가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니얼 보글러 파이낸셜타임스 아시아담당 편집국장은 "한국은 어느 국가보다도 재정과 통화 정책에 여유를 갖고 있는 만큼 이를 적극 활용해 경제 성장을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2주제 ] ◆ '동아시아 경협기구'가 필요하다 일본 대장성 국제금융담당 차관 시절 '미스터 엔'으로 불렸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게이오대 교수는 '동북아 경제의 번영과 과제'라는 주제로 진행된 제2토론에서 "아시아 국가들이 서구 선진 경제의 희생물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최소한 동아시아만이라도 진정한 의미의 경제협력기구를 설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외환위기때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IBRD) 등 국제 기구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아ㆍ태경제협력체(APEC) 등 지역내 기구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금융불안이 급속히 확산됐다는 지적이다. 특히 최근에는 중국의 개방으로 인해 지역내 불안정성이 높아져 경제협력 기구의 필요성은 더욱 증대됐다고 사카키바라 교수는 설명했다. 한편 장윈링 중국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소장은 동아시아 경협기구를 설립하기 위한 선결과제로 '다층적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주장했다. [ 3주제 ] ◆ 유럽형 정책에서 벗어나라 로버트 배로 미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향후 세계 경제에 대해 비교적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미국과 유럽의 투자도 서서히 살아나고 있고 중국과 아시아지역 국가들은 사스(SARSㆍ중증 급성호흡기 증후군) 때문에 일시적인 타격을 받았지만 하반기부터 정상궤도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했다. 배로 교수는 "미국이 최근 발표한 세금감면정책이 조만간 소비 및 지출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며 "아직 중동과 북한의 문제가 남아 있긴 하지만 미ㆍ이라크 전쟁 이후 전세계 경제를 짓눌렀던 불안심리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최근 들어 전세계적인 디플레이션 우려가 확산되고 있지만 실제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한국이 이같은 세계 경제 회복세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부가 친노조정책을 수정하고 동시에 시장에 대한 개입을 줄여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배로 교수는 "독일의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정부의 친노조적 태도는 노동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며 "그럼에도 한국 정부가 유럽형 정책을 따라가고 있는 것은 매우 우려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정부의 유럽형 정책이 바뀌지 않을 경우 '올해 4% 성장'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이 될 것이라고 배로 교수는 전망했다. 캐나다 토론토대 로트먼 경영대학원의 웬디 돕슨 교수는 "세계 경제가 하나로 통합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강대국 주도로 마련된 외부규범을 따라야만 한다"며 "이런 점에서 볼 때 한국은 정부 개입을 줄이고 대신 시장기능을 확충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