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우린 정전사태 없다지만…
입력
수정
경제학의 개념에서 자연재(自然財)였던 물은 이미 상품으로 가공돼 휘발유보다 비싼 가격에 팔리는 경제재(經濟財)로 바뀐지 오래다.
아담스미스가 효용과 가격의 불일치를 뜻하는 '가격의 역설'을 설명하면서 예로 든 물과 공기는 더 이상 유효한 사례가 아닌 셈이다.
반면 전력과 도로와 같은 사회간접자본(SOC)은 어떨까.
최근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한 미국 동부지역의 경우 발전은 북쪽 캐나다의 수력발전에 의존하는 반면 소비는 미국 동남부에 집중되고 있다.
주간선(主幹線) 전력망이 고장이 날 경우 대규모 정전이 발생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하지만 신규 송전망 건설이나 전력계통의 분산은 이뤄지지 못했고 결국 사회기간시설의 마비라는 재앙으로 나타났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력시장의 구조개편과 지역주민의 반발로 신규 송전망 건설이 그동안 억제됐기 때문이다.
국내 전력수요량의 40%를 넘게 차지하는 수도권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수도권내 발전소 증설은 각종 규제로 제한된 반면 공장 증가와 인구 유입으로 수요량은 매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수도권의 자체 발전용량은 수요의 절반에 불과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미국과 같은 원시적인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제로'다.
공기업인 한국전력이 과잉이라고 비판받을 수 있을 정도로 대규모 선행 투자를 해왔기 때문이다.
수도권의 경우 20% 이상의 예비전력과 이를 제외하고도 10%의 비상 전력공급망을 갖췄다는 게 한전의 자랑이다.
우리에게 전력은 아직 자연재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송전망 건설에 1㎞당 30억원,1m에 3백만원이 든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지역주민들을 위한 도로 및 교량 건설 등 선심성 투자도 포함된다.
송전탑 건설을 위한 직접 보상과 함께 '왜 수도권 주민을 위해 우리가 피해를 입느냐'는 지역 주민도 달래고 환경단체도 설득해야 한다.
결국 우리 국민은 전력만큼은 경제재가 아닌 자연재로 체감하고 있다는 한전측 자랑의 이면에는 전력시장 민영화가 초래할 재앙적 부작용을 경계해야 한다는 우려도 깔려있는 셈이다.
이심기 산업부 대기업팀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