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7일자) 신용불량자 채무 재조정

정부가 그동안 금융회사 자율에 맡겨 두었던 신용불량자 문제해결에 개입하고 나선 것은 고육지책이라 할 수 있다. 도덕적 해이 초래 등 부작용이 우려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신용불량자수가 3백35만명(7월말 기준)을 넘어서는 등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하고 있어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대책에 따르면 하나의 금융회사에 1천만원 미만을 연체한 81만명에 대해 정부의 금융감독 권한을 적극 활용해 채무 재조정이 활발히 이뤄지도록 함으로써 이들을 우선 신용불량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 여러 금융회사에 연체를 하고 있는 다중채무자에 대해서도 공동채권추심제를 도입해 신용불량자의 동시다발적 빚독촉에 따른 고통을 줄여 줄 계획이다. 물론 이런 정부대책은 임시방편적으로나마 신용불량자 수를 줄이고 이들의 고통을 덜어 주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대책만으로는 신용불량자 문제를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는데다 그 과정에서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데 있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신용불량자 수를 줄이는데 급급한 나머지 금융회사에 무리한 채무 재조정을 강요할 경우 금융부실이 우려된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앞장서 원리금을 깎아 줄 것을 종용하면 채무자들이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도덕적 해이를 초래하게 돼 결국 금융부실로 이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금융회사들이 관치금융이라며 반발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정부는 무리한 채무 재조정을 금융회사에 강요해서는 안된다. 이보다는 획일적이고 지나치게 엄격한 신용불량자에 대한 기준을 현실에 맞게 조정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본다. 재산상태나 소득수준을 고려함이 없이 30만원을 3개월 이상 연체하면 전 금융회사에 신용불량자로 등록되는 제도하에서 신용불량자 양산은 피할 수 없다.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고는 하나 경제활동인구의 17%가 신용불량자라면 기준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신용불량자 등록 관리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선진국과 같이 채무자의 연체정보를 금융회사나 신용정보회사가 관리하는 제도를 도입키로 한 것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경제를 살려 채무자들의 신용을 보강하고 채무자들도 빚을 상환능력 범위내에서 관리하는 관행이 정착돼야 신용불량자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