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우울한 여행 .. 金秉柱 <서강대 교수·경제학>
입력
수정
거리·시간·사색을 고루 갖추어야 뜻있는 여행이 된다.
행선지가 사는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일수록, 그 곳의 볼거리가 현재로부터 소급하는 시간이 오래일수록, 그리고 자신과 주변을 성찰하며 마음속으로 침잠하는 계기를 갖게 하는 여행이어야 가치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엊그제 다녀온 '앙코르와트' 3박 5일의 여행은 의미가 있었다.
요즘 지구촌 시대에 캄보디아는 거리로 보아 결코 먼 나라라고 할 수 없다.
'앙코르와트'의 거대한 석조사원물들이 대체로 기원후 802년부터 1432년 사이에 세워진 것들이어서 시간으로 보아 오랜 유적지라고 내세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곳을 오가는 비포장도로 위에서 덜컹거리는 차창 밖에 펼쳐진 일망무제의 넓디넓은 논밭을 바라보며 머리에 오가는 것은 '앙코르'시대를 풍미한 자야발만 2세 (제위기간 802~850), 수라발만 2세 (1112~1152), 자야발만 7세 (1181~1219) 등 걸출한 제왕들이 아니었다.
반거지로 전락한 현지인들 생활상과 도로·전기 등 열악한 사회간접자본을 보며 오버랩되어 떠오르는 얼굴은 조국을 공산화한 다음 수백만명을 살해한 '킬링 필드'의 주역 폴폿(1925~1998)과 그 시대를 마감시킨 훈센(1950~) 수상이었다.
1975년 미국의 지원을 받던 론놀 정권을 몰아낸 '크메르 루즈'군은 캄보디아를 단숨에 모택동식 집단농장국가·자급자족국가로 전환하고자 시도하며 도시민 등을 대량 숙청했다.
폴폿이 집권했던 4년(1975~1979)간에 농민·노동자가 아닌 체제반동분자들을 가려내 즉결처형하기 앞서 손금 뚜렷한 사람을 골랐다 한다.
손금 얘기는 6·25 동란 때 적 치하에 살던 사람들은 보고 듣고 체험한 터라 새롭지 않다.
훈센이 끔찍한 피의 숙청시대를 마감하고 사하누크를 상대로 마키아벨리를 닮은 정치곡예 끝에 정권을 장악하고 경제정책을 시장경제로 선회시켰다.
성공의 조짐들이 국경도시 포이펫이나 관광도시 시엠리엡에 우후죽순처럼 세워지고 있는 호텔·식당 등 건축물들과 길거리에 늘어선 상점 등에서 엿볼 수 있다.
그런 훈센이 키우삼판 등 '크메르 루즈' 주역들에 대해서 국제사회가 재판·처벌하라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정치보복을 삼가고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한국인은 어떠한가? 동지와 적의 구분선이 지나치게 뚜렷하다.
북한은 이미 수십만 반대자를 정치수용소에 감금한 김일성 부자 체제숭배자들의 천국이다.
남한 내에는 보수·진보(또는 혁신) 구분이 지나치고, 세대간 구분도 또한 그러하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피아간 구분이 마치 손금유무로 판정하듯 하고 있다.
조금만 의견이 다르면 반대파로 몬다.
비판을 수용하는데도 인색하다.
윗사람은 자기말하기에 바쁘고 아랫사람은 해명하기에 바쁘다.
더욱 괴이한 것은 북한 정권에 대한 정부자세다.
요즘 진행 중인 '유니버시아드'에서 폭력을 행사한 북측 기자단을 감싸고 도는 정부를 보면 그들을 국내 보수계층보다 친근하게 여기는 자세가 엿보인다.
훈센이 아시아 지도자들 가운데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가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라서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세계 최빈국 대열에서 선진국 문턱까지 올려놓은 업적 때문일 것이다.
평균 임금 월 20달러 수준, 유아 사망률 동남아 최고(7.3%), 평균수명 남자 53.6세, 여자 58.6세인 나라로서 부러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책방향을 바로 세우고 꾸준히 추진하는 정치지도력이 오히려 부럽다.
우리는 중국경제의 부상만을 우려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물론 태국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에도 부상하는 경제들이 있다.
저만치 밑바닥권의 캄보디아마저 오랜 내전을 마감하고 경제살리기에 발버둥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사실상 심리적 내전시대에 몰입하고 있다.
진보(개혁)는 정권과 방송매체를 장악하고 적을 몰아내려 하고, 보수는 저항하고 있다.
이런 내전 틈에 한국경제는 병들고 있다.
이미 지난 10여년 세월 허송한 이후 앞으로 4년 반 세월이 무섭다.
즐거워야 할 여행이 우울한 여운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