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사채시장 내몰리는 中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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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어음을 막지 못하면 부도가 나는데 사채를 안 쓸 수 있습니까."
시화공단에서 주물업을 하는 한 중소기업인은 "은행들은 신용대출을 늘리기는커녕 갈수록 담보를 더 요구해 돈 빌리기가 힘들다"며 "앞으로 회사 운영자금을 어떻게 조달할지 막막하다"고 한탄했다.
이 기업인처럼 제도금융권에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사채시장을 전전하는 중소기업인들이 늘고 있다.
반월공단에서 직원 5명을 데리고 도금업을 하는 K사장도 최근 은행에 대출상담을 하러 갔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은행이 요구하는 부동산 담보 등을 제공할 능력이 없었던 그는 어쩔 수 없이 공단내 소규모 사채사무실을 찾아야만 했다.
그는 "월 3%의 이자로 5천만원을 어렵게 빌렸다"며 "그나마 인보증없이 빌릴 수 있어 천만다행이었다"고 말했다.
시화공단내 임차공장에서 주물업을 하는 L사장은 더욱 심각하다.
그는 곧 만기가 돌아올 3천만원짜리 어음을 막을 길이 없어 서울 명동의 사채시장을 찾았다.
하지만 친척을 보증인으로 세워야 했고 게다가 선이자까지 떼이고 나니 손에 쥔 돈은 2천4백만원이 전부였다.
최근의 경기상황이 중소기업 사장들을 자금시장에서 '마약'과도 같은 사채시장으로 내몰고 있다.
최근 기협중앙회가 조사 발표한 '중소기업 금융이용 애로실태조사'에서도 중소기업의 사채이용이 급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채를 쓰고 있다'고 응답한 기업이 지난해 6.9%보다 1.7배로 증가한 12%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이용기간도 5.1개월로 작년의 4.3개월보다 늘었다.
기협 관계자는 "중소기업들이 사채를 쓴다고 밝히기를 꺼리는 것을 감안하면 실제 사채이용률은 이보다 훨씬 높을 것"이라며 "이대로 가다간 중소기업들이 사채 때문에 망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중소기업은 경기침체,가동률 저하,수금 곤란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자금융통마저 원활하지 못해 고리사채로 연명해야 한다면 연쇄부도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중소기업 자금지원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계주 산업부 벤처중기팀 기자 lee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