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4060 성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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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에 빠진 파우스트는 청춘을 되찾기 위해 마녀의 부엌을 찾는다.
젊어지고 싶다는 욕망에 따라나서긴 했지만 낯설고 이상한 분위기를 참기 힘든 파우스트는 소리친다.
"이 미치광이 짓같은 마술이 역겹구나.
이 더러운 국물이 내 몸을 30년이나 젊게 해준다고."
메피스토펠레스는 싫으면 "당장 들에 나가 밭을 갈고 땅을 파며,몸과 마음을 제한된 범위 안에 두고 자연식으로 몸보신을 하라"고 말한다.
'졸렬한 속임수'라며 거부하던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가 슬쩍 보여준 아리따운 처녀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자 결국 괴상한 동그라미 안에 서서 마녀의 주문을 들은 뒤 약을 들이킨다.
4060세대의 미용 성형이 늘어난다는 소식이다.
서울시내 한 피부과 자료에 따르면 2001년 1천3백건이던 40세 이상 남성의 피부미용 시술이 올 11월말 현재 3천4백11건으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굳이 수치를 들이댈 것도 없다.
점과 검버섯 잡티 쥐젖을 없애려 피부박피술이나 레이저 치료를 받고 얼굴이 벌건 채 다니는 건 주위에서도 볼 수 있고,미간과 이마 눈가의 주름 제거를 위해 보톡스주사를 맞거나 심술스런 느낌을 지우려 눈밑 지방을 없애고,대머리 때문에 모발이식 수술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남자가 무슨 성형"하며 고개를 젓던 이땅 중ㆍ장년층이 '집사람의 성화'를 핑계로 "나도 한번" 하며 용기를 내는 건 순전히 생존경쟁 때문이라고 한다.
나이든 흔적이 경륜이 아니라 고집과 무기력의 상징으로만 비치는 현실에서 어떻게 하든 젊게 보이려는 안간힘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남성의 평균 초혼연령은 29.7세. 31세에 아이를 낳아도 54세는 돼야 대학을 졸업한다.
재수라도 하면 55세,아들이어서 군대에 갖다오면 57∼58세는 돼야 한다.
현실은 그러나 '사오정 오륙도'도 부족해 '삼팔선'이라는 마당이다.
55세 정년을 채운다고 해도 첫 애의 대학 졸업 전에 일자리를 잃는다는 얘기다.
한국남성의 실질 은퇴연령이 68세라는 통계가 괜한 게 아닌 셈이다.
파우스트처럼 세상을 마음껏 즐기기 위해서도 아니고 오직 살아남기 위해 젊어져야만 하는 현실이 새삼 가슴 아프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