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 산업스파이] 삼성SDI 3兆이상 날릴뻔
입력
수정
대만의 C사는 지난 6월 브로커를 앞세워 삼성SDI의 PDP 개발팀장 A씨에게 접근했다.
A씨와 대만업체의 브로커는 서울 소공동에 있는 한 호텔 커피숍의 구석자리에 마주앉았다.
"32억원만 주시오."
"좋아요.
자료를 보내주면 그 즉시 입금하겠습니다.
원하신다면 저희 쪽에 자리도 마련해 놓겠소."
흥정은 간단히 끝났다.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PDP 다면취 공법'을 넘겨준다는 게 꺼림칙했지만 어차피 '인생은 도박'이라는 심정이었다.
연초 임원 승진인사에서 탈락한 탓에 회사에 대한 미련도 없었다.
'PDP 다면취 공법'은 한 장의 PDP 유리원판에서 2∼4장의 PDP를 잘라내는 공법으로 라인 증설 없이 생산물량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기술.일본의 NEC FHP 등이 앞서 개발했지만 42인치와 50인치 패널에 이 공법을 적용한 것은 삼성SDI가 처음이다.
워낙 중요한 첨단기술인 만큼 보안이 철저했다.
회사의 보안검색을 피해 원하는 자료를 밖으로 빼내는 것이 문제였다.
A씨는 "보다 자유로운 연구활동을 위해 필요하다"며 상사를 설득,플로피디스켓 취급허가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부서회의나 현장 엔지니어 등을 통해 수집한 기술자료는 속속 이 디스켓에 담겼다.
A씨는 이 자료를 자신의 집 데스크톱 PC로 옮긴 뒤 삼성SDI 로고를 떼고 영문판으로 개작했다.
9월 말께 기술을 빼돌리기 위해 모든 준비가 끝났다.
e메일 전송을 위한 단 한 번 클릭으로 총 16단계의 기술이 대만으로 넘어갈 판이었다.
하지만 국정원의 손길이 조금 빨랐다.
8월께 관련 첩보를 입수한 국정원은 은밀한 내사를 벌인 끝에 증거자료를 확보,검찰에 넘겼고 검찰은 1주일 만인 10월 초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A씨를 체포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삼성SDI가 3천7백억원을 들여 개발한 기술이 고스란히 경쟁업체에 넘어갈 순간이었다.
아울러 이 공법을 통해 내년에 세계 1위 PDP업체로 올라선다는 회사의 야심찬 계획도 무위에 그칠 뻔했다.
올 들어 국정원이 적발한 산업스파이는 총 6건.하지만 향후 매출 손실 등 피해 예상금액으로 따지면 삼성SDI 건(3조원 추산)을 포함해 무려 14조원에 달한다.
국정원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면서 "현재 산업스파이 관련 첩보가 1백여건 이상 접수돼 있으며 매달 10건 정도의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