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동해물과 백두산이'

이 영화는 북한인들을 대하는 남한 사람들의 변모된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다. 두 주인공은 북한 사투리를 쓰고 어색한 행동을 하지만 간첩으로 의심받지 않고 조선족으로 받아들여진다. 금강산 관광과 조선족들의 빈번한 왕래 덕분에 북한인들이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열린 세상에 나온 두 주인공에게 동해안 백사장은 호기심 천국이다. 여기서는 투철한 혁명정신으로 무장된(적어도 겉으로는) 백두보다 본능에 충실한 동해가 적응력이 강하다. 동해는 일찌감치 자본주의의 산물인 여자 나체사진을 감상하는 데 눈뜬 인물로 설정돼 있다. 결국 상관인 백두는 남쪽에서 부하 동해의 행동을 차츰 모방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우월성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적인 매력은 북한인들에게 맞춰져 있다. 백두의 훤칠한 외모와 뛰어난 무술실력,동해의 수준급 노래실력과 유머감각은 남한의 맞수격인 두 형사(박철과 박상욱)보다 더 강하게 시선을 붙든다. 남쪽 형사들은 두 주인공들에게 옷을 빼앗긴 뒤 그들을 쫓지만 늘 허탕만 치고 만다. 공권력의 어리숙함을 결집해 놓은 듯한 인물들이다. 제트스키타기 뗏목만들기 등 두 북한 군인이 귀향하기 위해 벌이는 시도는 미소를 머금게 한다. "갈빗대 순서를 혁명적으로 바꿔 놓는다"든지 "개마고원에서 땅을 팔 놈들"이라는 (남한 사람들이 지어낸) 북한식 농담도 우습다. 등장인물들이 모두 전국노래자랑에서 만난다는 설정은 극의 집중도를 높인다. 그러나 이 영화는 등장인물들간의 감정선을 견고하게 구축하는 데는 실패했다. 예를 들어 가출한 여고생과 북한 군인들간의 감정곡선은 군데군데 이가 빠져 있다. 그래서 작별의 순간 여고생이 흘리는 눈물이 관객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 31일 개봉,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