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환율 6일연속 하락] 정부 방어정책 '진퇴양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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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상승세'를 지속하던 원화 환율이 슬금슬금 꼬리를 내리고 있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달러당 1천2백원선 언저리에 있던 원화 환율이 불과 10여일 만에 1천1백80원선 밑으로 가라앉았다.
정부가 힘을 쏟았던 엔화와의 '디커플링(탈동조화)'도 약화되는 추세다.
이로 인해 정부가 환율 정책을 놓고 딜레마에 빠진게 아니냐는 분석이 고개를 들고 있다.
추가적인 시장 개입(달러 매입)은 내수 위축이나 물가 상승 등 부작용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크고, 그렇다고 환율 하락(원화가치 강세)을 용인하자니 수출 기업의 타격이 불보듯 훤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외환 당국의 환율 방어 '여력'이 한계에 달했다는 의구심까지 제기하고 있다.
환투기 세력의 '준동'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정부의 외환정책이 이래저래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 외국인의 달러 매물 공세
12일 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은 지난 주말에 비해 5원80전 하락한 1천1백76원10전을 기록, 6일 연속 하락했다.
1천2백원에 턱걸이 했던 작년 12월26일 이후 거래일 기준으로 10일 만에 24원이나 가라앉았다.
지난달 1백엔당 1천1백20원대로 치솟았던 원ㆍ엔 환율도 1천1백5원대로 떨어졌다.
엔화와의 동조화(커플링) 회복 조짐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원화가치가 이처럼 강세(환율 하락세)로 반전한 가장 큰 이유는 새해 들어 외국인들이 국내 주식을 2조원어치 이상 폭발적으로 순매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역외에서 주식투자와 무관한 외국인들의 달러 매물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다.
국내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을 넘나드는 외국인들의 '양동작전'에 원화 환율이 상승 탄력을 잃어버린 셈이다.
이밖에 △유로화 및 엔화 강세 △차액결제선물환(NDF) 정산 관련 대기 매물 △수출 호조로 인한 경상수지 흑자 등도 외환시장에 달러가 넘쳐나게 만든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 외환 당국 방어선 후퇴했나
환율이 연일 내림세를 보이면서 외환 당국의 정책 기조 변화가 불가피하고, 이로 인해 '마지노선'도 내려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외환시장 안정용 국고채(옛 외평채) 발행을 통해 시장 개입 자금을 꾸준히 확보하고 있지만 이를 무작정 시장에 쏟아붓기에는 시장 왜곡으로 파생될 부작용이 너무 커져 버렸다는 지적이다.
국고채나 통안증권 이자 등 시장 개입 비용도 '도'를 넘어섰다.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인위적인 환율 방어가 지속되면 수입 물가가 오르고 소비심리가 위축될 수 있다"며 "그렇다고 외환 당국이 당장 손을 떼면 환율이 한꺼번에 폭락해 한 바탕 홍역을 치를 우려도 높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세계 외환시장에서 유독 원화 환율만 상승세를 이어갈 경우 환투기 세력의 먹잇감이 될 공산도 크다"며 "정부도 이런 점을 고려해 예전에 비해 시장 개입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외환 당국의 환율 방어선이 후퇴했다고 판단하기에는 이른 시점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한 외국계 은행 딜러는 "최근 환율 하락 과정에서도 외환 당국은 상당 규모의 달러를 흡수하고 있다"며 "외국인 주식 순매수가 워낙 강력해 두드러져 보이지 않을 뿐 환율 방어 의지나 여력이 부족하지는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 조심스러운 상승 반전 가능성
환율 하락세가 추세로 굳어질 확률은 낮게 점쳐지고 있다.
외환 당국의 개입 의지나 일본 정부의 엔화 환율 방어 노력, 국내 정치ㆍ금융 불안 등을 감안하면 환율이 급락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하종수 외환은행 외환팀장은 "당분간 1천1백80원선을 중심으로 공방을 지속하다가 외국인들의 주식 매수세가 잦아드는 시점부터 환율이 다시 오름세로 돌아설 확률이 높다"고 내다봤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도 "환율 1백20일 이동평균선이 걸쳐 있는 1천1백78원대가 의미 있는 지지선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