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에서 배운다] (4·끝) '골프방 창업사례'

경기도 시흥시에 사는 이승재씨(44·가명). 그는 짧은 1년여동안 두번이나 사업에 실패했다. 좌절감으로 주저앉고 싶었다. 그러나 뇌종양으로 다섯번의 대수술을 받은 아들을 두고 마냥 실의에 빠져 있을 수는 없었다. 12살된 아들은 종양이 신경을 눌러 왼쪽 팔,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도 오히려 아버지를 위로했다. 그 아들은 지난해 세상을 떠났고 이씨는 전공인 학원사업으로 재기를 꿈꾸고 있다. 이씨가 10년간 하던 학원사업을 그만두고 새로운 사업을 찾아 나선 것은 지난 98년 초. 이씨는 88년부터 98년까지 10년간 초·중·고생을 가르치는 학원을 동생과 함께 운영했다. 1백50평 규모의 학원은 그런대로 잘 굴러갔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가 시작되자 별안간 학원생 숫자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학원을 동생에게 모두 맡겼습니다.그리고나서는 광고지와 신문을 뒤적거리며 새로운 사업을 구상했지요." 마침 신문광고에서 자동 코인 골프퍼팅기 체인점이 눈에 들어왔다. 당시는 박세리와 박찬호가 미국 스포츠계에서 막 뜨고 있던 때였다. 이들이 연일 승전고를 울려 국민들이 열광하던 시절이었다. 스포츠 관련 사업으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신문광고에 나온 골프퍼팅기는 단번에 이씨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골프퍼팅기 가맹사업을 하는 본사에 전화를 걸었더니 공교롭게도 기기 만드는 공장이 제 고향인 충남 공주여서 더욱 애착이 갔지요.시류에 맞는 사업이라고 생각한데다 설사 손해보더라도 고향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편하게 마음먹고 본사와 가맹점 계약을 맺었지요." 우선 자동 퍼팅기는 호기심이 많은 젊은 층에 먹힐 것으로 판단,대학가에 점포를 내기로 했다. 마침 식당을 하다가 내놓은 30평짜리 1층 점포가 매물로 나왔다. 임대보증금 3천만원,권리금 1천5백만원,월세 1백만원에 계약하고 자동 퍼팅기 8대를 대당 2백20만원에 들여왔다. 인테리어비 2천만원과 홍보비 5백만원이 추가로 들었다. 개점 후 처음 한달간은 호기심으로 학생들이 제법 들렀다. 그러나 두달째부터는 손님이 더 늘지 않고 제자리 걸음이었다. 박세리의 승전보가 뜸해지면서 단골고객 수도 점차 줄어들었다. 결국 3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아야 했다. "다른 사람에게 가게를 넘기려 해도 처분이 힘들었어요.그래서 이번엔 집을 담보로 은행대출을 받아 그 자리에서 PC방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업종이 달라진 만큼 인테리어는 전면 개조했다. 컴퓨터 30대를 구입,PC방을 꾸미는데 5천만원이 들었다. 고객에게 무료로 제공할 커피 자판기도 월 20만원씩 24개월 할부로 들여놓았다. PC방 사업 초기엔 하루 매출이 20만원이상 올랐다. 전용회선비와 아르바이트 급여를 빼고난 순익이 3백만원에 달해 생계 유지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IMF 사태 여파로 쏟아져나온 실직자들과 벤처 열기에 휩싸인 청년사업가들이 너도나도 PC방 사업에 뛰어들면서 제살깎아먹기식 경쟁이 벌어졌다. "기존 고객은 그대로인데 가게 앞뒤로 PC방이 우후죽순 들어서니 견뎌낼 재간이 있나요.가격내리기 경쟁이 벌어져 수익을 낼 수 없게 되어버린 거죠." PC방은 6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비싸게 샀던 컴퓨터를 헐값에 중고 컴퓨터업자에게 처분한 뒤 가게를 내놓아야 했다. 이씨는 두번의 실패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고 있다. 그는 "난치병과 싸우다 저 세상으로 먼저간 아들 앞에 재기에 성공한 아버지의 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다"고 다짐했다.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