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아버지와 아이들 .. 최병인 <노틸러스효성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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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choi@hyusung.com
한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하고 있는 한 외국인과 가정이란 주제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가족 구성의 기본을 묻는 질문에 그는 주저하지 않고 '감성적 유대관계'라고 정의했다.
가족 구성원간에 감정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들이 가족관계를 '혈연관계'로 보는 시각과는 사뭇 다른 해석이었다.
이런 외국인의 눈에 요즘 우리 사회에 발생하고 있는 가정파괴 현상은 어떻게 비쳐지고 있을까?
생활고로 버려지는 아이들,나아가 가족의 동반 자살로까지 비화되는 현상 등은 우리 사회에서 가정의 기본이 무너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렇게 극단적이진 않더라도 보통 사람들의 가족관계에도 부족한 점이 많다.
나는 그 외국인과의 대화를 계기로 내 아이들과의 관계를 생각해 봤다.
그렇게 강한 연결고리가 있다고 자신할 수 없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나와 아이들의 세계는 점점 멀어져만 가고 있었다.
공유할 시간이 없으니 공감하는 주제도 없고,아이와 연결되는 감정도 점점 엷어져 가고 있음을 느꼈다.
아이들이 집에서 수다스럽게 얘기하다가도 아빠가 나타나면 대화를 멈출 때,한가족이지만 아버지와 아이들의 세상은 따로 존재한다.
아내와 말다툼이 있을 때 아이들이 엄마 편을 들면 아버지는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내 경우도 네 명의 아이들이 엄마 편을 들어 5대1로 나뉠 때 '왕따'의 서러움 같은 것이 밀려왔다.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위기의식에 1년 전부터 변화를 위한 몇 가지를 시도했다.
일요일이면 막내와 공원에서 자전거 타기를 시작했다.
아빠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다고 기뻐하는 아이는 최소한 일요일만큼은 엄마보다 아빠를 찾게 됐다.
큰아이를 위해서는 가끔 학원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학원으로 퇴근한다.
창문 너머 아빠의 얼굴을 보며 기뻐하는 아이의 모습에서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선 공부와 친구 얘기 등으로 큰아이와 나의 세계가 만나기 시작했다.
얼마 전 학교 글짓기 시간에 아빠에 대해 작문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감동하였던지….
아이들의 그림 속에 가장 작게 그려졌던 아빠의 모습이 점점 커져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업의 성과는 요행이나 우연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투자의 결과다.
화목한 가족관계도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