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선거 사진을 찍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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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서울 중구의 한 시장 앞.사진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쉴새없이 터졌다.
모 정당 후보 운동원들이 TV드라마 대장금 복장으로 유권자들에게 한 표를 호소하는 장면이었다.
같은 날 전주에서는 한 후보가 30m 높이의 크레인 위에 올라가 선거구민의 지지를 부탁하는 아찔한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이런 유세 아이디어 경쟁은 각 당 정치 리더들에 의해 촉발됐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당 대표로 선출된 직후 민생 투어를 하면서 재래시장에서 앞치마를 두른 모습을 보여주며 '정동영 효과'의 재미를 톡톡히 봤다.
또 탄핵 가결 이후 보여준 대성통곡하는 모습은 국민의 코끝을 자극해 폭발적인 지지도 상승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런 상승세도 잠시.혜성처럼 나타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바람'이 판세를 뒤흔들었다.
박 대표는 선대위 출범식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구두 대신 운동화로 갈아 신으며 정동영식 이벤트 정치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박 대표는 때로는 눈물로,때로는 미소로 유권자들의 감성을 파고들어 '한 수 높은' 연출력을 보여줬다.
탄핵 역풍의 최대 피해자 민주당 추미애 선대위원장은 광주에서 3보1배를 강행하며 호남의 지지를 구하는 비장한 이벤트를 벌여 지지율 만회에 나섰다.
이런 바람과 감성의 정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정 의장이 노풍을 잠재우기 위해 선대위원장 및 비례대표 후보 사퇴와 단식농성에 돌입한 것.어느 바람이 더 센지 대세를 결론짓는 감성 정치의 절정의 순간이 온 것이다.
같은 시간 여의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선 또 하나의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한 정당 대표와 지지자들이 장미꽃을 한 송이씩 들고 주민들에게 '우리를 찍어달라'고 소리 높였다.
주민들이 왜 그들을 찍어야 하는지,무엇이 어떻게 변하고 좋아지는지 구체적인 설명은 들리지 않았다.
이 같은 감성의 정치는 미디어 선거가 자리잡고 감성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가 정치 전면에 나서면서 어느 정도 예상돼온 일이기는 하다.
뒷맛이 개운치 않은 감성 사진들을 나는 오늘도 편집국으로 전송하고 있다.
김병언 영상정보부 기자 misa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