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ㆍ日 전자산업 전면전] (上) '日 견제 본격화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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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수순이 시작됐을 뿐."
삼성SDI는 일본 정부당국의 PDP 제품에 대한 수입보류 조치에 대해 이같이 반응했다.
LCD에 이어 PDP 유기EL 등 첨단 디스플레이 산업분야에서 한국기업이 급성장하면서 일본의 위상이 무너지자 본격적인 견제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특히 최종 수입금지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통관을 보류한 일본 세관의 이번 조치가 국제무역 관례에도 어긋난다는 점이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 전자왕국 일본의 초조함
이번에 문제가 된 PDP는 불과 3년전만 하더라도 일본업체가 전 세계 시장의 87%를 독식하고 있던 제품.
그러나 삼성SDI와 LG전자가 본격적인 기술개발과 양산투자에 들어가면서 순식간에 격차를 좁히면서 지난해에는 일본업체의 절반수준으로 따라붙었다.
더욱이 올해는 삼성과 LG가 세계 1위를 놓고 국내기업끼리 경쟁하면서 세계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이라는게 시장조사기관의 예측이다.
PDP의 원천기술을 갖고 있던 후지쓰와 히타치는 서둘러 합작사를 설립, 공동대응에 나섰지만 이미 역전된 시장을 돌려놓기가 쉽지 않다는게 업계의 공통된 분석이다.
특히 삼성SDI의 1ㆍ4분기 PDP 판매량이 16만8천대로 전 분기보다 39%나 급증, 지난해 4분기에 이어 2분기 연속 PDP 1위를 기록할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 정부가 국제 통상관례를 무시하면서까지 한국기업을 견제하게 된 배경에는 LCD와 휴대폰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의도로 밖에 달리 해석할 수 없다는 게 한국 업체들의 지적이다.
LCD의 경우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가 이미 5세대 양산체제에 가장 먼저 진입하면서 일본과의 격차를 두 배이상 벌려놓았다.
지난 2000년 '일본 51.9대 한국 37.1'이라는 시장점유율이 지난해 '한국 43.9대 일본 21.8'로 완전히 역전됐다.
휴대폰의 경우 삼성전자가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노키아를 바짝 위협할 정도로 급성장하고 LG전자마저 소니와 대등한 수준까지 올라선 반면 일본업체는 제자리 걸음을 하면서 한국과의 시장점유율 격차가 확대되는 추세다.
◆ 일본정부 시장개입 논란
일본 정부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자국시장을 보호하는 한편 정부 주도로 다각적인 전자업계 회생책도 마련중이다.
지난해 후지쓰 히타치 파이어니어 등 PDP 5개사가 공동출자한 차세대 PDP 개발센터에 일본 정부가 사업비의 절반을 부담키로 한 것이 단적인 사례.
일본의 연구개발 능력을 총동원, 한국기업에 적극적으로 대항하겠다는 노골적인 의도를 밝힌 것이다.
올해초에는 파이어니어가 NEC의 PDP를 인수하는데도 일본 정부의 의도가 상당히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PDP 업체의 통ㆍ폐합을 통해 경쟁력 제고를 추진한다는 전략인 셈이다.
일본은 최근 FHP나 NEC 등 PDP 사업부문에서 적자로 고전하는 기업과 마쓰시타 파이어니어 등 TV메이커의 합작까지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 전자업계에서도 일본 특유의 '관치'를 통한 민간기업 경쟁력 향상이라는 프로그램이 시작된게 아니냐는 분석마저 제기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일본정부가 국제적인 자존심을 구겨가면서까지 자국 기업의 보호에 나선 것은 '전자왕국 일본'의 위상이 그만큼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도쿄=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