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시인ㆍ오현스님 10일간의 만남' 출간

노(老)시인과 선사가 만났다. 신경림 시인(69)과 강원도 인제군의 내설악 백담사 회주 오현(五鉉·72) 스님이다. '농무''새재' 등으로 유명한 신 시인은 현역 시인과 평론가들이 가장 먼저 꼽는 '국민 시인'이고 '설악산 큰스님'으로 불리는 오현 스님도 문단에선 잘 알려진 '시승(詩僧)'이다. 지난 겨울 두 사람은 백담사에서 모두 10여차례 만나 '내공'을 겨뤘다. 사랑과 욕망 여행 등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환경 통일 전쟁과 평화 등 묵직한 담론에 이르기까지 속내를 털어놓았다. 이들 두 노장의 대화는 '신경림 시인과 오현 스님의 열흘간의 만남'(아름다운인연,9천8백원)이라는 책에 담겼다. 책에서 시인은 "사회주의에 대해 약간의 환상을 갖고 처음 중국에 갔다가 매우 실망했다"고 털어놓는다. 사회주의의 미덕은 커녕 돈타령에 환경오염 등 탐욕이 대단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스님도 "미국을 여행하면서 많이 먹는 것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모습을 봤다"면서 "더 잘 먹고 더 편하게 살기 위해 욕심을 자꾸 키우는 것이 과연 옳은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호응한다. 첫사랑에 대한 두 노장의 고백도 진솔하다. 시인은 어릴 때 한 동네에 살았던 서너살 아래의 소녀와 연상의 여대생을 짝사랑했던 기억을 털어놓고 스님은 절간 공양주 보살의 딸을 좋아했으나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던 실연담을 들려준다. 스님은 "우리가 사랑으로 인해 행복해지려면 사랑을 받기보다 주는 일을 잘해야 한다"고 했고 시인은 "사람들이 너무 뜨겁다가 금방 식기보다는 은근하고 오래가는 사랑을 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인간의 욕망에 대해 "무소유가 아니라 무집착을 실현해야 한다"는 스님의 말에 시인은 "욕망과 집착을 너무 부정적으로 봐선 안 된다"고 이견을 제시한다. 그러자 스님은 "욕망을 욕망인 채 내버려 두면 아주 고약하고 몹쓸 것이 되기 쉽다"며 "신 선생님의 시 '목계장터'는 마치 초탈한 고승이 들려주는 무욕의 법문 같다"고 풀어나간다. 책 출간을 기념해 지난 10일 백담사 아래 만해마을에 마련된 자리에서 스님은 "신 선생님은 내게 비단을 덮어줬는데 나는 옥도(玉刀)를 주지 못했다"고 했다. 중국 금나라 때 사람인 원호문(元好問)이 '시가 선승을 만나면 비단을 덮어주고(詩爲禪客添錦花) 선이 시인을 만나면 옥도를 다듬어 주었다(禪是詩家切玉刀)'고 한 데서 이른 말이다. 그러자 시인은 "스님이 좀 괴짜승 같은 기질이 있어 보이고 말을 거침없이 하시지만 세상을 보는 눈이 매우 정확하고 날카롭다"고 치켜세웠다. 인제=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